[이종석의 6·15선언 들여다보기]'相生의 새틀' 마련을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57분


분단 55년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파장은 남북관계를 넘어서 동북아 국제질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상회담은 배제와 진압의 문화가 활개를 치던 한반도에 상생(相生)과 공영의 열정을 싹트게 하고 있다. 남북정상의 포옹은 한반도 냉전종식과 동북아 신질서 형성에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나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동안 세계로 나올 준비를 계획적으로 해왔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전방위적인 대외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시작한 99년부터 감지되었다. 대남전략도 혁명전략적 측면을 약화시키고, 자기체제의 유지발전을 목표로 한 생존전략적 차원으로 전환했다. 남북 공산화 모델에서 공존형 모델로 전환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이렇듯 전환기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기존 관성에 젖어있는 관련 당사자들에게 새로운 사고와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남북관계 측면에서는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 후속조치를 철저히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합의내용의 실천을 위한 분야별 실무협의기구를 빠른 시일 안에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무기구를 총괄조정하며 이후 정상회담문제를 논의할 장관급 상설위원회가 이원적으로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과 북은 모처럼 마련된 화해의 물결을 역류하는 우발적 분쟁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남북간 합의는 아직 자그마한 사건에도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다. 휴전선과 해상불가침경계선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방지하고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양측은 빠른 시일 내에 군사직통전화를 개설하고 최소한의 군사적 신뢰구축에 나서야 한다.

국제협력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문제 해결 당사자는 남북이 되어야 하나, 분단의 원인을 제공하고 정전체제를 유지해온 또 다른 주체인 주변 강대국과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대미관계가 중요하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미사일위협의 신뢰성이 약화되면서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문제가 논란에 싸였다. 이는 이 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의 이해에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사건이 엉뚱한 곳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한미간 상호이해와 공고한 협력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 문제해결과정에서 남북주도력이 강화되는 것이 자칫 미국에는 영향력 약화로 비춰질 수 있다. 그동안 남북대화의 단절과 함께 북-미협상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열쇠처럼 인식되던 시절이 장기화되면서 마치 미국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재자인양 비쳐졌었다. 정상회담은 남북한 주도력을 복원시킴으로써 과대했던 미국의 영향력을 정상화했다. 바로 이 점을 미국은 우려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페리 프로세스와 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민족 내부적 프로세스가 대체관계가 아닌 보완관계에 있음을 미국에 잘 설득해야 한다.

우리사회 내부의 준비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 문화 제도 속에 스며있는 냉전문화를 청산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냉전구조 유지의 기제였던 국가보안법 등 제반 법적 장치를 개폐하고 ‘남남대화’로 표현되는 사회내부의 공존문화를 형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통일교육도 북한을 ‘적대적 형제’로 보는 이중적 현실인식 아래 북한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형제애를 증진하는 노력을 담은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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