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南南대화'가 우선이다

  • 입력 2000년 6월 18일 19시 36분


한반도에 양김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남한 정치를 지배해온 3김시대가 퇴조하고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대중대통령-김정일국방위원장의 새로운 양김구도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펼쳐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김-김(DJI) 공조’로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분단 이후 처음으로 두 정상이 만난 사실만으로도 그 의의를 인정하기에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통일방안 국민적 합의 시급▼

그러나 정상회담을 전후해 정부가 보여준 몇가지 절차상의 문제와 남북공동선언 내용에 드러난 몇가지 모호함으로 인해 사회 일각에서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논란은 주로 선언문 1항과 2항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 ‘자주’라는 표현의 의미가 애매하다는 것과 남북한 통일방안의 내용과 합의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측의 연합제가 김대통령 개인의 3단계 통일방안에 근거한 것이지 공식적으로 채택된 정부안이 아니지 않느냐는 점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공동선언문 5개항 가운데 3, 4, 5항이 당면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1, 2항은 남북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점에서 1, 2항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정부는 하루 빨리 다음 3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김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개인의 외교적 성과가 아닌 국가의 외교적 성과로 높이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됐지만, 남북관계는 민족간의 관계이기 이전에 엄연한 국가간의 관계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결과를 국회에 출석해 소상히 설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동선언의 불명료한 부분이 충분히 토론됨으로써 차후 남북관계 추진에서 내부적 걸림돌을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단순히 원로나 야당 지도자와 식사하며 설명하는데 그친다면 대통령 스스로 국회를 경시하는 것이며 외교성과를 국가가 아닌 개인의 성과로 축소시키는 것이 되고 만다.

둘째, 김대통령은 야당 지도자 시절 만든 3단계 통일방안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된다. 통일은 도상(圖上)에서 계획한 대로 단계적으로 오지 않으며 그런 예도 없다. 이런 역사적 현실을 무시하고 계획에다 현실을 맞추려는 것은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통일방안은 없고 평화공존 방안만 있을 때 오히려 통일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역설을 인정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상회담 합의가 결코 통일이 아니라 남북간의 장기적 평화공존을 위한 합의였음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쓸데없는 기대에 부풀지 않을 것이며 들뜬 기대 뒤에 오는 실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점에서 김대통령의 통일방안이 공론화 절차를 거치지 않은 만큼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일면 타당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가 절차적 민주주의임을 생각할 때, 공론화의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문제를 인정하고 조속히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공론화돼야 할 내용이 단계적 통일방안이어서는 안된다. 그 속에 통일은 비전 정도로만 피력돼야 하고 실질적인 장기적 평화공존방안이 내용의 주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책 연속성위해 필요▼

마지막으로 김대통령은 이번 합의 내용이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실 이번 공동선언 내용 중 단기간에 완결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이 점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것은 향후 남북공존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의 연속성은 남한 내부의 정치세력들간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따라서 현정부는 이중과제를 안고 있다. 한편으로는 남북화해와 공존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남(南南)대화를 긴밀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는 남남대화가 우선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국민적 합의가 없는 남북화해와 공존 추구는 국론분열을 가져와 정상회담의 성과마저 무위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일영(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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