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이것만은]주강현/문화교류 정례화하자

  • 입력 2000년 6월 5일 19시 25분


어느 결에 남북한 인사들이 처음 만나면 이북 노래 ‘반갑습니다’를 부르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 헤어질 때는 이남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마무리되곤 한다. 남북은 이처럼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잠시나마 ‘하나’가 된다. ‘밥먹듯이’ 문화매체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화의 시대’임을 생각해본다면 남북관계에서 사회문화의 잠재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평양청소년예술단이 다녀갔으며 교예단 공연이 시작되는 등 다양한 남북 문화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문제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사회문화교류는 그 폭과 깊이를 더할 것이 자명하다.

그동안 통일 및 북한문제에 대한 인식은 정치경제적 문제로만 접근되는 편향성을 보였다. 하지만 통일공동체를 염두에 둔다면 쌍방간의 동질성을 확보해 화해의 단서를 마련해나가는 사회문화에 대한 인식 심화에 남북 모두 신경써야 할 것이다.

정치군사문제가 합의되지 않았으니 문화교류는 무망하다는 판단은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전적으로 틀린 답이다. 정치군사문제와 무관하게 대규모 공연단이 서울에 와 있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제도화하기 위한 협의가 정상회담의 의제로 정착되길 희망한다.

물론 이남의 ‘선정적’ 분위기와 이북의 ‘관료적’ 분위기가 사회문화교류를 쉽게 이뤄지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문화를 구성하는 역사, 언어, 생활풍습, 공연예술, 미술, 영상, 문학, 음악, 종교, 대중매체, 생태, 여성생활, 전통의학, 교통통신, 법생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 통일신도시 건설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문화적 접근 없이 남북교류의 일대 전환점을 만들기는 어렵다.

사회 문화교류를 최단거리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남북의 책임 있는 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굵직한 정부베이스의 교류를 정상회담에서 몇 건이라도 합의해야 한다. 현재 금강산관광 등의 교류가 있지만 문제는 ‘민간 단위’에서 ‘행사성’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간 ‘물밑 작업’에 의한 교류가 아니라 정부간에 ‘공식 합의’하는 문화교류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좋다.

둘째, 행사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남북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내용, 민족동질성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평양역사박물관의 고구려유물전, 국립민속박물관과 평양민속박물관의 민속문화 5000년전 등이 그것이다. 평양과 서울에서 순회공연한다면 공연물과 달리 여러 달에 걸친 장기적인 만남이 이뤄질 것이다.

셋째, 행사식 교류에 그치지 말고 제도적 교류를 정착시켜야 한다. 사회문화교류는 과거 정부에서도 남북교류의 상징적 사례로서 쌍방의 필요에 의해 ‘연출’돼 왔다. ‘연출’이란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언제까지 쌍방간에 ‘연출’로 정치적 교류의 들러리 같은 ‘상징성’만 따지고 있을 것이냐는 비판적 의미다. 실속 있고 중장기적이며 제도적인 정착이 요구된다.

넷째, 지금까지 남북 문화예술교류의 대부분은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한국과 관련 있는 국가를 통해 이뤄졌다. 교예단이 높은 비용을 치르면서 꼭 베이징(北京)을 거쳐서 비행기로 돌아올 필요가 있을까. 직거래를 합의해 보자.

주강현<문화재 전문위원·사단법인 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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