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여대의 '여대괴담'

  • 입력 2000년 5월 31일 20시 47분


경인왕국의 시녀학생들?

경인여자대학(이사장 백창기) 학생 2천여명과 교수 50여명이 ‘족벌재단 퇴진’을 요구하며 23일 무기한 철야농성에 돌입한지 9일 째.

▲경인여대에는 총학생회가 없다?

개교 9년 째인 경인여대. 지난 3년 동안 총학생회가 없었다. 학생들이 총학생회장에 입후보하면 재단측이 정학을 시키겠다고 위협해 총학생회 구성을 막았기 때문이다. 2년제라는 특성(?) 탓에한 해만 총학 구성이 미뤄지면 새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비상총학생회 투쟁국장 천에리사씨(관광영어과 2)의 말.

“재단 측이 선거에 나온 학생회장 후보를 정학 조치로 위협하는 등 학생회가 아예 구성되지 못하게 손을 썼어요.”

총학생회 뿐 아니라 경인여대엔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과사무실과 조교다. 총학에 따르면 재단은 통합사무실 하나만을 운영하며 학생들이 일체 학교운영에 개입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컴퓨터도 없는데 웬 3억원 짜리 조각상?

“필수과목인 컴퓨터 수업인데도 강의실에 컴퓨터 보급이 제대로 안돼 있어요. 컴퓨터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더니 재단측은 너희들이 어차피 고장낼 거 왜 사느냐고 해요 ”

경인여대에 들어서면 야외 갤러리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조각상 20여개가 즐비해있다. 본관 앞의 조각상은 무려 3억원이 넘는 것이라고 한다.

세무회계과 한 학생의 등록금 고지서를 보면 타 학교에는 없는 항목이 있다. 바로 1만원의 ‘학교기증품비’. 천에리사씨은 “바로 이 돈으로 조각상들을 산 거에요”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실습비로 호화생활?

총학에 따르면 학생들은 실습비를 납부했지만 실습실을 제대로 쓸 수 없다. 학생들의 실습수업이 있는 시간에 돈을 받는 사회교육원생들의 실습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

지난 23일 학생들은 학교 내 체육관 2층 이사장의 호화사택에 진입했다. 최지선양(비상총학 집행위원장, 사회체육과 2학년)은 “호화욕조, 금비누, 라스포사의 옷들, 고급가구들, 달러뭉치, 보석들…정말 휘황찬란했어요” 라며 사라진 실습비의 행방을 말했다.

이사장 사택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경인왕족’전용 엘리베이터도 있다는 후문.

▲무자비한 언론탄압

올해 경인여대엔 유명한 학보사 사건이 있었다.

주영미양(경인여대 학보사 편집장, 인터넷비즈니스학과 2학년)은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 근로 장학생한테 강의실 청소를 시켜요. 이 문제를 학보에서 다뤘더니 학보가 나간지 5시간만에 학장이 바로 학보를 전부 회수했어요”

경인여대의 학보가 발간되려면 학장의 사전 검열을 거쳐야 한다. ‘학보사 사건’이 있던 날. 학장이 사전검열을 했지만 미처 이 기사를 발견 못 했던 것.

이밖에 비상총학은 ▽재단의 교재판매 폭리 및 횡령▽등록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사라져가는 장학금▽국가지원금 횡령▽ ‘경인왕자’ 기획실장의 향락과 망언▽종교의 자유 탄압▽교수들에게 백지사표 강요 등을 이유로 ‘경인왕국’퇴진을 요구하며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은 매일 집회를 갖고 과별 철야교대를 하며 정문,본관 등을 봉쇄하고 있는 상태.

31일 경인여대 정문은 산업환경공학과 학생들이 지키고 있었다.

취업실습을 나가야 하는 2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정문철통수비에 나선 김수연양(산업환경공학과). “학교를 바로잡기 위해서 라면 힘들지만 열심히 할거에요.”

이날 김수연 양을 비롯해 ‘학교를 바로잡기 위한’ 1000여명의 경인여대 학생들은 부평역에서 ‘재단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희정/동아닷컴기자 huib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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