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진 권고받은 김종필씨]"세상이 혼란스럽구만"

  • 입력 2000년 1월 24일 19시 36분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럽구만. 하긴 이보다 더한 일도 견뎌왔는데….”

24일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공천반대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뒤 JP는 허탈한 표정으로 이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자민련의 한 당직자는 전했다. JP는 언젠가 국민의 ‘정치불신’에 대해 “국민이 정치를 모욕하면 결국 국민이 정치로부터 모욕당하고 만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5·16 군사쿠데타, 공화당 창당 때 4대 의혹사건, 80년 부정축재….’ 시민연대측이 제시한 이유들은 JP에겐 사실상 ‘업보(業報)’나 다름없는 것들. 그는 이날 ‘명예로운 은퇴 권고’까지 받았다.

시민연대측의 공천반대인사 명단이 발표되던 같은 시간. JP는 자민련 입당자 환영식에서 “왜 화합이 불가능한가. 과욕을 부리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상대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직자들은 “JP에게서 비장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자민련이 이날 공동정권의 파트너인 청와대와 민주당을 겨냥해 “치밀한 각본극”이라고 강력히 반발한 것도 이같은 JP의 ‘분노’가 반영된 것. 간부회의에 참석했던 한 부총재는 “이는 명백한 ‘자민련 붕괴 시나리오’라는 게 대다수의 일치된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자민련 당직자들이 제기한 ‘시나리오’에 대해선 이날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대신 설명했다. 그는 “YS 정권 때도 최형우(崔炯佑)의원이 JP를 거세하려다 JP가 다시 살아났다. 이번엔 DJ가 시민단체의 입을 빌려 JP를 궤멸시키려 하지만 결국 충청도에서 자민련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꼴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민련과의 공조관계를 의식한 민주당측은 JP가 포함되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당직자는 “JP와 관련된 내용이 모두 역사적 사건들인데 그렇다면 현대사를 살아온 모든 정치인들이 유죄가 되느냐”며 애써 JP를 변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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