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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3월 1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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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프닝은 근본적으로 총리실의 부당한 지시에 원인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총리가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학생들에게 낭패를 당한 것은 불쾌한 일일 것이다. 차량파손이라는 재산상의 손해까지 당했으니 총리실 관계자들의 심정은 알고도 남는다. 학생들로부터 사과를 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총리실이 택한 방법은 사려깊지 못했다. 이번 해프닝은 이른바 높은데서 지시하면 못할 게 없다는 고압적 태도와 권위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반성문은 말할 나위도 없이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쓰는 것이다. 따라서 반성문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총리실이 반성문을 받아내라고 경찰에 지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학생들로부터 반성문과 변상금을 받아내는 일이 경찰의 업무영역에 속하지도 않는다. 즉 총리실의 이번 지시는 내려서도 안될 뿐만 아니라 따르지 않아도 되는 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다.
총리실의 지시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경찰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대 담당 정보형사는 상부의 책임추궁이 두려웠던지 총학생회 간부의 가짜 도장까지 새겨 반성문을 허위작성하고 변상금 30만원도 자비로 마련하려 했다는 보도다. 상부의 지시가 부당하다면 그 점을 지적해 시정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옳다. 그런 점에서 부당한 지시내용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말단까지 내려보낸 경찰 지휘라인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부당한 지시를 따르려는 자세는 아직도 경찰이 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실례다. 부당한 지시임을 알고도 조작과 왜곡으로 상부의 기분을 맞추는 권위주의 시절의 타성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언필칭 민주화 사회를 살고있다. 위에서는 부당한 지시를 하지 말아야 하고 아래에서는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지시만 내리고 따르는 공직사회의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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