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처형說 의미]北 개방포기 체제고수로 회귀 분석

입력 1998-09-23 06:45수정 2009-09-2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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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우(金正宇)전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서방국가를 상대로 나진 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 대한 투자유치활동을 벌이는 등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창구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그는 96년7월 일본에서 대북 투자설명회를 개최한 것을 비롯해 미국 스위스 동남아 국가 등지를 순회하며 활발하게 외자유치 활동을 벌여 국제무대에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42년 양강도에서 출생한 김정우는 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82년10월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을 맡으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경제통이면서도 남북대화와 북―미 회담에도 관여했을 만큼 활동범위가 넓었다.

그는 90년9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서울에 왔다가 승용차 연쇄추돌사고로 경미한 부상을 입은 일도 있다. 그는 또 92년 8차 고위급회담까지 매번 북한측 대표로 회담에 나왔고 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이 김일성(金日成)을 면담했을 때 배석하는 등 한국기업인들과도 많은 접촉을 가졌다.

김정우는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에 참석, 94년11월 북―미 제네바합의를 타결시키는데도 관여했다. 그가 이처럼 ‘실세’로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일(金正日)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김일성의 조카라는 설도 있다. 그가 ‘깡돌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당차고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인 것은 이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부정축재를 이유로 처형된 게 사실이라면 이는 그만큼 북한이 자본주의 물결로부터 체제를 지키려는데 부심하고 있음을 입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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