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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13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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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통일부 관계자들은 이번 고시가 ‘관계 법령의 정비’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의 도서와 음반의 반입은 외국간행물 수입 배포에 관한 법으로 규제했는데 앞으로는 이 법 대신에 ‘남북교역대상물품’이라는 새로운 틀로 규제하게 될 뿐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설명이었다.
한 관계자는 “이번 고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북한의 도서 음반 비디오를 반입할 수 있는 기관은 여전히 특수자료취급기관으로 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입에는 통일부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승인을 얻을 수 있는 기관은 아직까지 공산권자료 취급인가를 가지고 있는 특수기관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이 관계자는 “다른 관계 법령의 개정도 뒤따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일부장관이 반입을 승인한다고 해도 북한 도서와 음반 비디오는 여전히 이적표현물에 관한 보안법과 형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이들 법도 개정되어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반입과 유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방향과 의지다. 도서 음반 비디오는 그 영향력에 있어 공산품이나 농산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분단 반세기 동안 보안법 위반시비의 상당부분이 북한에서 제작된 도서나 영상물의 소지와 청취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처럼 파급효과가 큰 북한의 이념전달 매체들을 남북간에 교역이 가능한 품목으로 전환하고 통일부장관의 승인만 있으면 들여올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술품 공예품 우표 화폐 사진 엽서 연하장 등만이 교역대상 품목이었다.
이것은 곧 앞으로 예상되는 남북간의 본격적인 교류에 미리 대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새 정부는 이미 적절한 시점이 되면 북한방송 청취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지난달에는 리틀엔젤스의 북한공연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방송국 차원에서 평양으로부터 서울로 공수돼 정부의 사전 검열 없이 내용 전부가 방송된 적도 있다.
안기부는 요즘 일반인들도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북한의 신문이나 책 등을 열람할 수 있도록 특수자료취급지침을 개정 중에 있다. 관계자들은 특수자료취급지침이 완화될 경우 북한 도서와 음반 등에 대한 접근은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