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대선 패배후 구심점을 잃은 한나라당 내부가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대여(對與)관계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가위기 상황에서 집권경험을 가진 거대 야당이 제몫을 못하고 국정 운영에 부담만 준다는 데 있다.
대선 이후 한나라당 지도부는 연일 집단지도체제 도입이니, 경선 실시니 하며 당권 다툼에만 골몰하는 인상이다. 급기야 김윤환(金潤煥)의원은 3월 전당대회에서의 총재 경선 출마를 시사, 조순(趙淳)총재 등 당 지도부로부터 반발을 사는 상황까지 왔다.
초 재선의원 등 소장파도 나름대로 불만이다. “당 중진협의체가 도대체 뭐냐”며 지도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초선의원 30여명은 12일 국회에 모여 의원총회 권한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집안 형편’이 이러니 제1당의 역할인들 제대로 할 리 없다. 한나라당은 정리해고 도입 문제와 관련, “96년12월 정리해고제 도입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안에 국민회의가 반대한 데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 국민회의와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임시국회 개회를 위한 총무협상에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한시가 급한 때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다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나온다.
재벌 개혁 문제도 그렇다. 한나라당은 “재벌은 상호지급 보증 등 문어발식으로 형성된 복잡한 것이므로 함부로 손대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재벌의 상호지급 보증 및 문어발 구조 개혁은 국민적 공감대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요구사항의 핵심이다. 이를 외면한 한나라당 주장은 건전비판세력으로서의 야당이라기 보다 친(親)재벌적인 과거 여당 모습에 가깝다.
조순총재가 9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의 총리 인준 거부를 시사한 것도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사안의 성격상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당론도 수렴해보지 않은 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공표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나왔다.
이한동(李漢東)대표가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으로 결정할 일”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국민회의 소속 위원회에 들러리로 참여할 수 없다”며 정부조직개편위원회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행정개혁이 국정개혁의 단초인만큼 형식 문제를 들어 거부한 것은 옹졸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대선 이후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와 이대표 등은 “우리는 무조건 반대만 하는 과거 야당 스타일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새로운 야당의 모습을 창출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에 새로운 역학구조가 정립되지 않아 제각각 노는 바람에 혼선을 빚고 있다”며 “야당으로 거듭나는 과도기의 시행착오인 만큼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제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