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대사 가족동반 망명

  • 입력 1997년 8월 25일 20시 17분


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 부부의 망명은 장씨가 金正日(김정일)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거점 공관의 현직대사이자 지금까지 북한 망명인사 중 외교관으로서는 최고위 인사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더구나 장씨는 프랑스주재 북한총대표부 참사관이면서 무역대표부 대표이기도 한 형 장승호씨 일가족 4명과 함께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월 黃長燁(황장엽)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으로 드러난 북한지도층 인사들의 체제불만이 이제는 치유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증거다. 장씨의 망명동기는 아직 확실치 않다. 아들 철민군의 지난해 8월 잠적사건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같으나 무엇보다 북한체제의 현실에 대한 회의와 절망감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 망명인사들을 보면 외국에 주재하거나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부인이 만수대예술단의 주역배우로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고 자신도 고속 승진을 한 장씨가 망명을 결행한 것을 보면 외국과 체제를 비교할 수 있는 북한 지도층 인사들, 특히 외교관들의 망명 도미노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북한정권이 장씨의 망명을 남한의 공작에 의한 납치사건으로 몰아붙이며 뒤집어씌우기 선전으로 나올지 또는 황장엽씨 망명 때처럼 「갈테면 가라」는 식의 자포자기(自暴自棄)태도를 취할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장씨의 망명사실이 북한사회에 알려지면 엄청난 동요가 뒤따를 것이고 곤경에 빠진 북한정권은 엉뚱하게 주민들의 관심을 한반도 위기쪽으로 돌리려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이 현재 진행중인 4자회담이나 남북한 관계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과 장씨의 망명사건은 당연히 별개로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북한 지도자들은 그들 사회에서 특별혜택을 받아온 장씨가 왜 망명의 길을 택했는지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폐쇄사회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외부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개방 개혁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우리도 정권이나 어느 정파의 정치적 이해를 따져 과거처럼 한건주의로 이번 사건을 이용하려 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러한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국민들이 우선 공감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북한을 자극해 남북한 관계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장씨문제는 본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면서 국제관례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옳다. 장씨와 그의 가족들이 한국망명을 희망한다면 최종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그들이 제삼국을 원한다면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것이 지금 정부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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