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대선자금과 한보사태, 그리고 金賢哲(김현철)씨사건으로 상징되는 정치부패 및 정치와 돈의 기형적 유착관계는 결코 우발적인 것도 아니고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는 해방 이후 50여년 동안 지속돼온 정치제도와 관행의 모순이 절정에 이른 결과다.
부패를 자행해온 것은 특정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개개의 인간들이지만 부패행위의 근원은 단순히 그들 개개인의 탐욕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부패를 가능케 하고 심지어는 조장까지 해온 정치체제의 구조적 약점이 보다 중대한 원인이었음에 착목해야 한다.
鄭泰守(정태수)씨와 김현철씨는 그같은 체제의 허점을 악용해온 「악한(惡漢)」들 중 대표적 거물일 뿐이다. 대선자금에 시달리는 金泳三(김영삼)씨도 그같은 체제구조적 모순을 활용해 대통령에 당선된 원죄적 업보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야당의 지도자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질적으로 같은 원죄가 있다.
정치와 돈의 악성유착의 근원을 혁파하려면 세가지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야 한다. 정치에 과다하게 돈이 드는 제도와 관행, 정치권력으로 돈을 버는 비리, 돈으로 정치권력을 움직여 돈을 버는 관행이 지속돼왔다는 점이다. 즉 「고비용정치구조」 「권력형 부정부패」 「정경유착」 등이 「돈정치」의 근원인 것이다.
대선자금 문제는 고비용정치구조를 방치한데서 발생한 정치부패의 절정이다. 『앞으로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김대통령의 선언도 정치부패의 구조적 핵심을 잘못 짚은 잘못된 해결책이었다. 그는 자신의 청렴만 내세울 뿐 아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를 낳은 구조적 근원을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철씨사건은 정치권력으로 부(富)를 축적해온 오랜 관행의 「문민정부형 복사판」이다. 또 정태수씨는 돈으로 정치권력을 움직여 돈을 벌어온 시대착오적 관행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준 「공로자」다.
현재 정치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비용구조개혁」은 「돈정치개혁」 과제 중 한가지 근간이다. 따라서 보다 전반적인 구조적개혁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구조개혁 없는 범법자의 처벌만으로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김영작 <국민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