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회고록 발췌6]우정위해 「40년명예」포기

  • 입력 1996년 12월 19일 08시 45분


왜 하필 자신이 가진 것중 가장 눈부신 부분, 가장 뛰어난 부분, 가장 광채에 찬 것, 가장 불멸의 것을 왜곡시키도록 허락하고 있는 것일까. 그분은 너무 엄청난 결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와 큰아이를 동시에 불안하게 했다. 사실상 그 일은 내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자신을 돌볼줄 모르는 그분의 기질―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 기질을 견뎌내는 것은 평범한 내겐 언제나 힘에 겨웠었다. 그러나 그날밤 일은 너무 치명적이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품성도, 그 정도면 거의 자해적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잔인하기 짝이 없다는 권력의 속성앞에서 그렇게 소년같은 심정으로 순정을 바쳐도 좋단말인가. 권력의 속성이 그분의 순정을 삼류멜로드라마로 전락시켜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큰아이는 그분께 매달렸다. 『꼭 그런 치명적인 방법밖엔 없습니까』 『왜 꼭 그런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왜 40년 우정만 소중하고, 40년 명예는 그렇게 마구 취급당해도 좋단말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만류했다. 그러나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그분 결심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분은 도리어 정열적으로 자신이 왜 흔쾌히 그렇게 했는지를 설명했다. 그날밤 나와 큰아이가 그분에게서 확인한 것―그분은 이미 7년간 나라가 자기삶의 테마였고, 그리고 바로 그밤에도 그분의 세계는, 아직도 국가와 역사앞에 무엇인가 유익한 것을 보태야한다는 바로 그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분의 그 열정앞에, 나와 큰아이의 소박하고 실질적인 가족으로서의 근심은 속수무책이었다. 가족도 그분을 막을 수 없었으므로 이제 소위 「6.29선언」이라고 불리도록 운명지어진 민주화구상안, 그분 7년통치의 절정의 꽃인 그 영광의 화환은 고스란히 노대표에게 넘겨지고 헌정된 셈이었다. 그날 난 그것이 권력이동의 구체적 첫 순서라는 것을 알았다. 사흘후 노대표는 호기롭게 청와대를 방문하고 있다. 그 방문은 당이 마련한 시국수습방안을 그분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위장돼 있다. 그분과 마주앉은 자리에서 노대표는 몇가지 대담한 건의를 함으로써 그분 허락속에 약속된 자신의 드라마를 전개시키고 있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노대표의 건의에 대한 그분의 반응이다. 그분은 노대표의 모든 건의를 완전수락하고 있다. 노대표의 건의대로 그분은 윤보선 최규하 두 전직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그 자리에서 그분은 비상조치없이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고 약속한다. 김영삼총재를 포함한 야당총재도 만나고 있다. 야당총재들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그분은 자신의 호헌의지를 바꿔 개헌논의를 다시 열겠다는 언약을 한다. 그 다음 언급이 중요하다. 드디어 그분은 노대표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제 드라마는 상당히 많은 진전을 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무드는 다른 것이 아니다. 민주화조치에 대한 모든 신선하고 파격적인 구상이 노대표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그분은 노대표의 젊고 독창적인 구상에 의해 계몽당하고 있는 수동적 인물로 부각되면 성공인 것이다. 어떻든 이제 노대표가 전격적인 민주화조치를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히 발표할 수 있는, 그 어떤 선언의 충분조건은 완전히 갖추어진 셈이다. 노대표는 그분에게 이미 파격적인 민주화 제의를 하고 있고 그분은 모든 전권을 노대표에게 준다는 선언으로 화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선언의 날, D데이는 6월 29일로 정해졌다. 보안은 완벽했고 준비도 끝이 났다. 그날 이후 노대표는 그분을 만날 수 없었다. 그분은 노대표에게 금족령을 내렸던 것이다. 더이상 노대표가 청와대를 드나드는 것은 민주화선언이 전적으로 노대표 개인의 작품이라는 데에 흠을 남길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분은 노대표에게 더이상 자신을 만나지 못하도록 금족령을 내림으로써 노대표에게 흠없는 완전한 영광, 완전한 양보를 선물하기 원했다. 그것이 자기약속에 대한 그분의 열정이고 진심이었다. 아무도 그분과 노대표사이에 오간 이 엄청난 약속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분은 금족령 이후 자신과 노대표 사이의 연락책임을 큰아이 재국에게 맡겼다. 큰아이는 매년 세배를 다니던 노대표의 집을, 이제는 한 역사적 사건의 심부름꾼으로서 묵묵히 드나들어야 했다. 며칠 안되는 그 기간동안 큰아이 재국은 제5공화국 최고 정치 드라마의 목격자가 된 셈이다. 역사가들의 말대로 혁명이란 단지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듯 정권교체란 단지 앉아있던 의자나 좌석표의 교환만은 아닌 것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속엔 임기를 마치고 집무실을 떠난다는 단순한 사건 이상의 그 무엇, 국가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축소시키고, 어떻게 잊혀지고, 어떻게 퇴장시키는가에 대한 엄숙한 밀의가 담겨 있는 것이다. 어떻든 그 며칠간 재국은 좋은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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