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6월29일 오전. 盧泰愚(노태우)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은 민정당사 9층 회의장에서 중앙집행위원회 개회를 선언한 직후 「국민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을 낭독했다.
20여분간에 걸친 특별선언의 주요내용은 △연내 대통령직선제 개헌 △金大中(김대중)씨 사면복권 △모든 시국관련사범 석방 등 시국수습을 위한 8개항. 그의 발표가 끝나자 중집위원들은 모두 박수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특별선언문 낭독을 마치자마자 사회권을 넘기고 당사를 떠나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그는 이어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찾았다. 그는 현충사 참배후 『여러가지 감회에 젖는다. 이따금씩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을 때 현충사를 찾는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그는 또 『조금전 묵념할 때 나는 그분(충무공)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고 잠시나마 그분의 뜻과 구국의 정신을 느껴보고 싶었다. 또 그 당시의 역사와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충정도 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온양시내 음식점 「아산정」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특별선언을 하게 된 뒷얘기들을 털어놨다.
결심시기에 대해 그는 『꽤 오래전이었다』고 밝히고 全斗煥(전두환)대통령과의 사전상의여부에 대해서는 『내가 발표문에서 앞으로 건의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부인, 단독결심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분도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간담회 도중 몇차례나 『이제야 술맛이 난다』면서 맥주잔을 여러차례 들었고 『이제 홀가분하게 밥좀 먹자』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꼬박꼬박 답변했다. 그러나 유독 김대중씨 사면복권 부분에 대해서는 한사코 언급을 피하며 『오늘 아침 운동을 했는데 단숨에 결심을 해서 그런지 2백m를 단숨에 달렸다』고 화제를 돌렸다.
현충사에서 귀경한 그는 부상전경들이 있던 경찰병원과 사경을 헤매던 李韓烈(이한열)군이 입원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차례로 방문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노대표는 이군의 병실을 찾아가려 했으나 병원측에서 『학생들이 병실주변에 남아있다』며 만류, 원장실에서 이군의 아버지만 만나 위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노대표는 연희동 자택에 돌아와 기자들과 정원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시며 10여분간 대화를 나눈 뒤 기자들을 물리쳤다.
〈李哲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