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연봉 포기한 시골의사 “환자 두고 못떠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7일 03시 00분


임경수 전북 정읍 고부보건지소장
3년전 정읍서 제2의 인생 시작… 병원장 임기뒤 지역 보건지소 자원
월300만원 받으며 옥탑방서 생활… “시니어의사 공보의 채용 열어줘야”

임경수 전북 정읍시 고부보건지소장이 진료실에서 공중보건의의 길을 택한 소회를 설명하고 있다. 33년간 근무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직하고, 정읍아산병원장으로 일했던 임 소장은 지난해 9월 병원장직에서 내려온 뒤 11월부터 고부보건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읍시 제공
임경수 전북 정읍시 고부보건지소장이 진료실에서 공중보건의의 길을 택한 소회를 설명하고 있다. 33년간 근무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직하고, 정읍아산병원장으로 일했던 임 소장은 지난해 9월 병원장직에서 내려온 뒤 11월부터 고부보건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읍시 제공
“열악한 환경에 놓인 환자들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서 남게 됐네요.”

임경수 전북 정읍시 고부보건지소장(68)은 1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보건소에서 일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임 소장은 대한민국 응급 의료체계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4년 박윤형 전 순천향대 석좌교수와 응급의료법 초안을 작성했고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였던 그가 정읍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건 정년퇴직을 앞둔 2022년 당시 의료원장의 제안 때문이었다. 33년간 근무한 병원을 떠나는 임 소장에게 의료원장은 정읍아산병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임 소장은 그해 1월 병원장에 취임했다.

“지역에 내려와 보니 의료환경이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기본적인 체계는 갖춰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임 소장이 말했다. 그는 “전국 장애인 발생률이 5.1∼5.6%인데, 정읍은 10%에 달했다”라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이 제대로 관리돼야 하는데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부족하고, 이 때문에 환자들이 약을 제때 먹지 않는 등 관리가 되지 않아 중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임 소장은 발로 뛰기 시작했다. 지역농협 협조를 받아 농촌을 돌며 환자들을 치료하는 ‘백세 버스’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벽지를 찾아 주민을 돌봤다. 지난해 9월 병원장 임기가 끝났지만 백세 버스 활동을 하며 본 현장은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결국 고부면 보건지소장에 지원해 같은 해 11월 보건지소장으로 부임했다.

주변인과 가족들은 모두 만류했다. “함께 일하면 4억 원의 연봉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보건지소장 월급은 300만 원 정도다. 임 소장은 “지소 옥탑의 5평짜리 방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다.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는 매주 월∼목요일 나흘간 정읍에 머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료를 본다. 틈틈이 고부면 44개 마을을 돌며 만성질환 특강을 하기도 한다. 임 소장은 더 많은 시니어 의사가 지방 의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중보건의로 근무해도 사학연금 지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고 시니어 의사를 공중보건의로 채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임경수#전북#정읍 고부보건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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