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현대차 포니… 한국경제의 첫 발자국을 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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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로 본 東亞]<中> 한국기업의 성장과 전환점

《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3번째 64K D램 개발 성공!’ 1983년 12월 6일 동아일보 1면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 광고가 실렸다. 앞서 1976년 1월 27일엔 현대자동차가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광고를 냈다. ‘우리 힘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차 포니 탄생.’ 다음 달 지령 3만 호 발행을 맞는 동아일보 광고지면은 한국을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기업들의 성장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1980년대 주요 기업이 성장하면서 신문지면을 통한 광고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삼성전자와 금성사(현 LG전자)가 가전시장을 놓고 벌인 자존심 싸움은 세계 1위 전자업체를 키워낸 자양분이 됐다.

금성사는 1959년 ‘금성 라듸오’(이하 당시 표기) 개발에 이어 1966년 국내 첫 TV를 생산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샛별 텔레비전’이 인기를 끈 금성이 ‘기술의 상징, 금성’ 광고를 내자 삼성전자는 ‘첨단’ 두 글자를 더해 ‘첨단 기술의 상징’ 카피로 맞불을 놨다. 금성사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광고로 되받았다.

두 회사의 기술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미래를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1986년 금성사는 ‘기술이 생활을 편리하게 즐겁게 한다’며 ‘테크노피아’ 광고 시리즈를 시작했다. 컴퓨터를 하는 사람들 모습을 광고에 실었는데 개량한복을 입은 농부가 컴퓨터로 날씨를 예측하는 장면이 이채롭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는 ‘인간과 호흡하는 기술, 휴먼테크’로 대응했다. 당시로선 새로웠던 컴퓨터그래픽 기법의 광고는 인간과 기술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렸는데, 말로 가전제품을 움직이는 음성인식 기술도 당시 광고에 등장한다. 두 회사의 광고전쟁은 1990년대 기술력 경쟁에서 이미지 경쟁으로 옮겨갔다.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과 LG전자의 ‘사랑해요 LG’가 맞붙었다.

금융업 성장사도 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紙幣機(지폐기)로 세인 돈이 電線(전선)타고 送金(송금) 된다.’ 1959년 6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광고다. 사람이 직접 세어 돈을 관리하던 것에서 기계화, 전산화로 막 접어들던 때의 광고다. 1970년 4월 28일자에 실린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의 ‘편리 새 생활 예금’ 광고에선 지금 금리와 비교하기 어려운 연 9.6%의 높은 금리가 눈에 띈다.

자본과 기술이 축적되며 자신감이 붙은 기업들은 차차 해외로 눈길을 돌린다. ‘수출입국’의 꿈이 광고에 묻어난다. 1976년 첫 국산차 포니를 내놓은 현대자동차는 ‘경제적이고 아름다운 포니’라고 포니 세단을 소개한 뒤 ‘강력한 성능의 포니P엎’ ‘디젤엔진 1톤 트럭 포터’ 광고를 잇달아 냈다. 2년 만인 1978년엔 생산 대수 10만 대 돌파, 40개국에 수출 2만5000대 돌파 광고가 실렸다. 성장을 거듭한 현대차는 엘란트라가 독일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독일 명차를 추월하는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달린다’ 광고(1991년 12월 2일자)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선경(현 SK)이 동아일보에 게재한 ‘세계 곳곳을 우리의 장터로’ 시리즈 중 하나인 ‘거대한 시장 미국’ 광고가 있다. 미국 인디언 얼굴을 크게 담은 이 광고는 미국의 역사, 사고방식, 시장을 소개한다. 당시 시카고지사장 얼굴도 실렸다. 1978년 선경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으면서 섬유회사 이미지를 탈피해 세계화를 지향하는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낸 광고였다.

1990년대엔 이미지 광고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0년 민영화 이후 본격 광고 캠페인을 시작한 포스코는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시리즈를 했고 현대중공업은 정주영 창업주가 생전에 즐겨 쓰던 표현인 ‘(도전) 해봤어?’ 시리즈로 기업가정신을 앞세웠다.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장은 “가전시장에 경쟁사보다 늦게 진입한 삼성전자가 국내 1위에 이어 세계 1위까지 올라선 것은 기술의 힘도 있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쌓아온 기업 이미지가 밑바탕이 됐다”며 “인터넷 광고가 마케팅의 주류가 된 지금도 이런 이미지의 힘은 여전히 통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누적된 이미지의 힘은 롯데껌, 초코파이, 박카스 같은 ‘국민 기호’를 낳았다. 1967년 5월 11일자엔 ‘약진하는 롯데’라는 기업 광고가 실린다. 주로 제품 광고에 치중하던 시기 이례적인 기업 광고였다. 1946년 일본 연구소에서 껌을 만들어 성공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이 광고로 한국 진출을 알렸다. 1972년 롯데는 당시로선 기술력을 상징하는 ‘대형 껌 탄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를 내놓으며 껌 시장을 장악했다.

1962년 4월 박카스 광고는 ‘젊음과 활력을!’이란 슬로건을 썼다. 6·25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남았고 국민 상당수가 영양실조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피로회복’이라는 키워드를 일찌감치 선점했다. 1973년 6월 21일자 3면의 야쿠르트 광고 슬로건은 ‘온 가족 다같이 건강을…’이었다. 동양제과(현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1974년 탄생했다. 1980년대는 ‘라면의 시대’였다. 1986년 10월 출시된 농심 ‘신라면’은 ‘사나이 대장부가 울긴 왜 울어’란 첫 광고문구가 강한 인상을 남기며 부동의 1위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이명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신문광고의 흐름은 1950년대 제약 광고, 70년대 가전 광고, 2000년대 자동차와 통신 광고로 이어져 왔다”며 “국내 기업과 산업이 발전하면서 그 사회의 발전상과 사회 문화를 반영하는 광고가 시대에 따라 변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용석 yong@donga.com·송충현·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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