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착 난민제도’에 따라 한국을 찾은 미얀마인 네 가족 22명이 23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장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안 니영 하쎄∼요(안녕하세요).”
23일 오전 8시 반 인천국제공항. 구릿빛 피부에 맨발로 플립플롭(일명 ‘조리’)을 신은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입국장으로 나왔다. 어색한 한국말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며 나온 이들은 태국 난민캠프에서 지내다 ‘재정착 난민’으로 인정돼 한국 땅을 밟은 미얀마 난민이다. 2013년 국내 난민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 맞는 재정착 난민이다. 올해 8월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천을 받아 현지에서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이들은 태국 ‘메라 난민캠프’에 있던 쿠트 씨(43) 가족 8명, 나이우 씨(29) 가족 5명, 텐소 씨(34) 가족 6명과 태국 ‘움삐엠 난민캠프’에 있던 푸처 씨(32) 가족 3명 등 총 22명이다. 난민캠프에서 지낼 때 옷차림 그대로였지만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이들은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잠깐 놀라는 듯했지만 이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바닥에서 미끄럼 놀이를 하며 장난을 쳤다.
1993년 내전을 피해 아내와 큰딸(23)을 데리고 태국 난민캠프로 들어갔던 미얀마 소수민족 카렌족 출신인 쿠트 씨는 “난민캠프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준 한국에 감사하다”며 “한국에서 평범한 가족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캠프에서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바닥과 기둥에 나뭇잎을 덮어 만든 집에서 살았다.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일당 150밧(약 4800원)으로는 가족이 먹고사는 것도 힘들었다. 쿠트 씨는 2006년 돈을 벌기 위해 몰래 벌목을 하러 나갔다가 지뢰를 밟아 오른쪽 발목이 잘려 의족에 의지하고 있다.
간단한 입국 행사를 마치고 대한민국 입국 및 정착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난민 여행증명서’를 받은 이들은 자신의 사진과 체류 인증서가 담긴 증명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은 입국심사대 관계자들에게 ‘배꼽 인사’를 하며 “감샵 니 더(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입국에 앞서 철저한 신분 조회와 사전 교육을 받았다. 8, 9월 국가정보원의 신분 조회를 거쳐 10월엔 한국 면접관 3명이 난민캠프를 직접 방문해 가족별로 4시간에 걸쳐 기본 인성, 재정착 의사 등을 묻는 면담을 실시했다. 질병 및 전염병 건강검진도 모두 통과한 뒤 지난달 중순 재정착 난민으로 최종 선정됐다. 그리고 19일 태국 현지에서 한국의 법무부 관계자들을 만나 이날 함께 입국했다.
난민 가족들에게는 다른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행을 택한 건 비슷한 문화와 교육 때문이었다. 쿠트 씨는 “한국과 미얀마는 문화, 음식, 피부색 등이 비슷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춤도 출 줄 알고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했던 아이들이 부모에게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이들은 국내에서 거주자격 비자(F-2)로 살게 된다. 인천 난민센터와 대안학교인 한누리 학교 등에서 6개월 동안 한국어와 기초 법질서 교육, 생활·직업 교육 등을 받는다. 법무부는 앞으로 3년간 30명가량의 미얀마 난민을 재정착 난민으로 수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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