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울기만 해” 했다가 엉엉 운 노벨상 수상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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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헌트, UCL명예교수 물러나고 왕립학회서 사과 종용에 절망
“농담인데 성차별이라니 억울”

여성 차별적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팀 헌트 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명예교수(오른쪽)와 그의 아내 메리 콜린스 UCL 면역학과 교수. 사진 출처 옵서버
여성 차별적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팀 헌트 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명예교수(오른쪽)와 그의 아내 메리 콜린스 UCL 면역학과 교수. 사진 출처 옵서버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팀 헌트 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명예교수(72)는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무심코 토한 39개 단어의 농담으로 인해 현기증 나는 추락을 맛봤다.

“여성들과 얽힌 제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실험실에 여성들이 있을 때 세 가지 일이 일어난답니다. 당신은 그들과 사랑에 빠지고, 그들도 당신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다 당신이 비판을 가하면 그들은 눈물을 터뜨립니다.”

분명 여성 비하적 요소가 담긴 발언이었지만 여성 과학자들과의 오찬 때 농담 비슷하게 나온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 발언이 트위터를 통해 “여성 과학자들은 울기만 해서 골칫덩이”라는 취지로 퍼져나가면서 헌트 전 교수는 10일 영국 도착 전에 평생 쌓아온 과학자로서 경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UCL은 명예교수직 사표를 내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했고, 유럽연구이사회(ERC)는 이사직에서 물러나라고 했으며, 영국왕립협회는 이미 유감 표명을 한 그에게 더 정중히 사과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그는 결국 11일 영국 하트퍼드셔 자택 거실 소파에 앉아 절망감에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지켜본 그의 아내 메리 콜린스 UCL 면역학과 교수도 눈물을 쏟았다. 영국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서버는 14일 이 부부 과학자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헌트 전 교수는 문제의 발언을 했던 때의 상황에 대해 “불안하고 조금 혼란스러워 미쳐버렸던 것 같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반어적인 농담에 불과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동료 과학자 중 누구도 자신에게 발언의 진의를 확인하지 않고 자신을 ‘성차별적 돼지’로 낙인 찍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끝장났다”면서 “과학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는데 독극물 신세가 돼버렸고 내 입장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학술기관에 의해 버려졌다”고 말했다.

아내 콜린스 교수도 남편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 발언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고 어리석은 말을 종종 하지만, 성차별주의자는 아니다”면서 “나 자신이 여성주의자인데 만약 그가 성차별주의자였다면 내가 참지 못했을 것”이라며 남편에 대한 ‘마녀사냥’에 분개했다.

헌트 전 교수를 잘 아는 여성 과학자들도 변론에 나섰다. 오톨린 라이저 케임브리지대 식물학 교수는 “대학원 과정 때 그의 제자였지만 그는 성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며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과학 분야에 뛰어든 여성에게 끔찍한 시간이 기다린다는 암시라면 반대로 나는 환상적 시간을 가져왔다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팀 헌트#여성 비하#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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