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가 아니라 ‘주경녀’로 불러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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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A생명 주부출신 설계사들

18일 서울 중구 순화동 AIA생명 빌딩에서 경력단절여성 보험설계사 양성 프로그램인 ‘쉬즈AIA’ 출신 설계사들이 모여 영업성과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AIA생명 제공
18일 서울 중구 순화동 AIA생명 빌딩에서 경력단절여성 보험설계사 양성 프로그램인 ‘쉬즈AIA’ 출신 설계사들이 모여 영업성과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AIA생명 제공
“경력 단절요? 가사육아 경력을 쌓은 거지, 단절이 아니에요.”

“맞아, 맞아. 주부 경력은 보험설계사에게 더없이 좋은 경력이에요.”

18일 서울 중구 AIA빌딩. AIA생명의 경력단절여성(경단녀) 대상 보험설계사 양성 프로그램인 ‘쉬즈AIA’ 출신 설계사들이 ‘경단녀’라는 말에 발끈하며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대기업 직원에서 주부로, 이제는 고객을 돌보는 보험설계사로 변신한 이들이다.

이들은 보험설계사에 도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았다. 차은정 씨(41)는 대형 건설회사에서 임원 비서로 근무하다 결혼 후 전업주부가 돼 두 아들을 키웠다. “두 아들의 대입 뒷바라지까지 하고 문득 돌아보니 20년간 ‘누구 엄마’로만 살아왔더군요. 이제는 제 이름을 찾고 싶었어요.”

이지윤 씨(41)도 웬만한 직장인보다 바쁜 학부모로 지내다 자녀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상실감을 느꼈다.

“아이들 학교 끝나면 간식 만들어 먹이고, 학원 데려다주고 공부 도와주며 바쁘게 생활했는데, 갑자기 여유가 생기니 공허함이 찾아왔어요.”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우울해하던 이 씨는 친구의 권유로 설계사 일을 시작하게 됐다.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설계사로 변신한 이도 있다. 김은지 씨(29)는 “출산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너무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다”며 “일을 시작하면서 자기관리도 하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경단녀 출신 보험설계사들은 주부로 일한 경험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가정을 꾸리고 돌본 경험 덕분에 고객들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씨는 “20년간 전업주부이자 맏며느리,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왔기 때문에 고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공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녀의 입시부터 대학 등록금 부담, 부모님의 병간호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 고객의 고민도 남 일 같지 않다. 이명선 씨(47)는 암 투병 끝에 먼저 떠난 남편 대신 가장이 되기 위해 설계사 일을 시작한 만큼 보험이 필요한 이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남편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병으로 세상을 떠 보험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고객에게 어떤 보험이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지 상담해준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경단녀 보험설계사들은 우수한 실적을 내고 있다. 이지윤 씨는 자녀의 학업을 꼼꼼히 챙기고 뒷바라지한 실력으로 고객들을 챙기다보니 1년 만에 우수한 영업실적을 거둬 실적이 좋은 설계사들에게 주는 상인 연도상을 받았다. “가사와 육아는 소중한 인생 경험이고 훌륭한 경력이에요. 경력이 단절됐다고,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 있게 사회에 나서야 해요.”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경단녀#주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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