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양철북’ 울리려… 독일 대문호 떠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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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 88세로 타계

소설 ‘양철북’으로 유명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13일(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 인근 뤼베크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8세.

그는 1927년 독일 단치히자유시(현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독일계 아버지와 슬라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청소년기를 보냈고 뒤셀도르프국립미술대, 베를린예술대 등에서 수학했다.

그는 독일 전후 세대 문학 조류를 대변하는 작가로 평가받았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17세 고교생 시절 나치군에 복무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포로가 됐다가 석방되고 잡부와 석공으로 일하다가 조각가가 되려고 뒤셀도르프미술학교를 거쳐 1952년 베를린예술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파리에서 조각과 그래픽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설을 썼다.

1959년 쓴 ‘양철북’은 그를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반열로 끌어올렸다. 양철북은 1979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양철북은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독일의 일그러진 역사를 주인공인 난쟁이 오스카 마체라트의 시점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세 살이 되던 생일날 일부러 계단에서 떨어져 성장을 멈추기로 하고 양철북을 잡는다. 이 소설은 그의 가족의 역사, 자신의 고독한 학교시절, 단치히의 소시민적 세계, 전쟁과 전후 시대를 이른바 ‘개구리 시점’으로 회상한 자서전적 장편이다. 당대 문학계는 비정상적인 난쟁이의 눈에 비친 정상인들의 세계가 더욱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이채롭게 구성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의 나치 복무 전력이 대중의 배반감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그는 지성인으로서 정치적 행동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1960년 독일 사회민주당에 들어가 핵무기 반대를 외치며 빌리 브란트 총리의 재선을 위한 시민운동을 이끄는가 하면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 소속 헬무트 콜의 낙선 운동에도 나섰다.

일간 디벨트가 2005년 실시한 ‘현존하는 독일인 중 최고의 인물’에도 그는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 요슈카 피셔 전 외교장관, 앙겔라 메르켈 총리, 콜 전 총리 등과 함께 거명됐다. 고향인 단치히 3부작으로 불리는 ‘고양이와 쥐’(1961년), ‘개들의 시절’(1963년)도 인간사회를 비판적 시선으로 그렸다.

한국에선 그라스의 대표작 ‘양철북’을 비롯해 ‘넙치’ ‘텔크테에서의 만남’ ‘게걸음으로 가다’ ‘라스트 댄스’ ‘나의 세기’ 등이 번역돼 소개됐다. 그는 2002년 5월 한일 월드컵 전야제에 참가해 축시 ‘밤의 경기장’을 낭송하기도 했다. 독일 분단을 겪은 그는 판문점도 방문했다.

2006년 그라스가 출간한 자서전 ‘양파껍질을 벗기며’를 번역 중인 장희창 동의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판문점을 다녀온 그라스가 흥분한 표정으로 ‘남북한이 형제인데 왜 그렇게 싸우느냐, 제발 싸우지 말라’고 당부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양파껍질을 벗기며’는 국내에 6월 출간될 예정이다.

이유종 pen@donga.com·박훈상 기자 
#양철북#귄터 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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