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사는 유명자 씨(70)가 2010년 여름부터 뜬 털모자 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털모자는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보내져 그 개수만큼 생명을 구했다. 이 모자가 신생아의 저체온증을 막아 목숨을 지킨 것이다. 유 씨는 2007년 시작한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모자뜨기 사업에 참여한 14만여 명 중 가장 많이 모자를 떴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모자뜨기 사업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건강 때문이었다. “중환자실에만 4개월을 있었어요. 침대에 계속 누워 있을 때 제일 부러운 게 병원 자원봉사자들이었어요. 늘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었죠.”
2000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은퇴한 유 씨는 2004년 11월 갑작스러운 심장 대동맥 파열로 대수술을 받았다.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3년 동안 수차례 합병증을 겪고 수술을 두 번 더 하고서야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유 씨의 소원은 ‘죽기 전까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 뒤 조금만 무리해도 숨이 가빠오는 탓에 외출이 어려워 기회를 찾지 못했다. 아프기 전에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고 매일 요가를 할 정도로 활동적이었던 유 씨였다. 그러다 TV에서 우연히 맑은 눈망울의 아기들을 만났다. 유 씨는 “가난한 나라의 신생아들에게 저체온증을 막아주는 털모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방을 떠나지 않고도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50개를 뜨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식사 시간과 자는 시간 외 대부분을 뜨개질로 보내다 보니 올해 여름에는 병상에 있을 때도 걸리지 않던 습진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지금은 따로 ‘뜨개질 방’을 만들어 털실을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한다. 유 씨는 “단순히 많이 뜨는 게 아니라 아기들 피부색이나 그 나라 전통의상 색깔을 참고해 예쁘고 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털실에서 나는 먼지가 건강에 좋지 않지만 유 씨의 고집을 아는 남편은 집안 청소를 하며 말없이 돕고 있다.
코바늘을 쥔 그는 “모자뜨기 덕분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며 “요즘 제 또래 노인을 보면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며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는데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꼭 물질적인 것에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한 두 손이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했다. 유 씨는 오늘도 기대에 찬 얼굴로 새 털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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