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5년? 동화 같지만… 난, 녹슬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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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의 살아있는 전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칠순을 한 달여 앞둔 백전노장은 혈기가 넘쳤다. 은퇴할 때라는 주위의 평가에 대해 “힘이 닿는 데까지 팀을 이끌겠다”며 오히려 더 강한 욕심을 드러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 1986년 11월 6일 맨유를 맡아 25년 동안 각종 우승컵을 37번이나 들어올렸지만 “나는 아직 배고프다”며 은퇴를 거부했다. 맨유에서 25년째를 맞는 6일 선덜랜드와의 홈경기를 앞둔 퍼거슨 감독은 “동화 같은 이야기다. 이렇게 오래 감독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감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최고의 관리자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409경기 836승 326무 247패로 승률 59.33%를 기록한 퍼거슨은 타고난 관리자다. 선수 선발과 관리, 이적, 훈련, 경기 등 모든 것을 책임지며 보잘 것 없었던 맨유를 명문으로 만들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코치로 보면 퍼거슨 감독보다 뛰어난 지도자가 많지만 매니저적인 면에선 역대 최고의 감독이다”고 평가한다.

퍼거슨 감독은 유망주 발굴의 귀재다. 첼시가 막대한 자금력으로 세계적인 스타급 선수로 정상에 오른 반면 맨유는 퍼거슨 감독의 안목에 따른 유망주 발굴로 명문으로 도약했다.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루이스 나니, 박지성은 물론이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망주가 퍼거슨을 거쳐 월드 스타로 도약했다. 전임 감독 론 앳킨슨이 완성된 선수만을 사려 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유망주를 발굴해 키웠다.

2005년 박지성의 영입은 베컴 공백으로 줄어들던 아시아 시장을 다시 장악한 교두보였다. 베컴이 있을 당시 ‘베컴 투어’가 있을 정도로 일본과 중국 팬들이 맨체스터를 찾았었다. 베컴의 이적으로 아시아 시장이 잠잠해졌지만 박지성을 영입해 스타로 키우면서 맨유의 아시아 투어를 병행해 아시아 팬을 다시 확보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오른쪽)이 2005년 맨유에 입단한 박지성과 함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DB
알렉스 퍼거슨 감독(오른쪽)이 2005년 맨유에 입단한 박지성과 함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DB
○ 두 얼굴의 심리술사

퍼거슨 감독은 선수들과 장난치는 모습에선 동네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지만 승부의 세계에선 아주 냉혹하다. 선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라커룸에서 불호령을 내린다. 2003년 라커룸에서 잉글랜드의 영웅 베컴에게 소리를 치며 축구화를 걷어차 상처를 입혔을 정도다. 그 강도가 선수들의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라 해서 붙은 별명이 ‘헤어드라이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워크를 해치면 쓰지 않고 한 번 믿으면 쉽게 버리지 않는다. 베컴, 야프 스탐, 로이 킨 등 퍼거슨에 반기를 들거나 동료를 비난한 선수는 어김없이 버렸다. 반면 ‘괴짜’ 에릭 칸토나가 관중을 향해 이단옆차기를 한 뒤 방출 압력에 시달렸을 땐 그를 감싸고돌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게 했다. 퍼거슨은 포르투갈 대표를 뛴 호날두가 2006년 독일 월드컵 잉글랜드 전에서 웨인 루니의 퇴장을 유도하며 ‘공적’이 됐을 때도 든든한 보호막이 돼 줬다. 부상에 시달리던 박지성의 이적설이 나돌 때도 “박지성은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이적설을 잠재웠다. 그는 “팀보다 중요한 선수는 없다”고 말한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처음 맡았을 때 리그 우승 7회로 리버풀(16회)에 한참 뒤졌으나 지난 시즌 19회 우승으로 리버풀(18회)을 제치고 잉글랜드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는 맨유를 넘어 잉글랜드의 전설이 됐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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