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감탄… 세계인에 통할 작품 만들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9일 03시 00분


세계적 오페라 연출 거장… 獨프라이어 씨 ‘수궁가’ 맡아

“유럽은 문화적 예술적으로 소진됐습니다. 그래서 피카소는 아프리카를 자신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였고 존 케이지는 동양의 음악을 사용하고 붓을 들었죠. 반면 한국은 판소리를 비롯해 풍부한 문화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만 머물러선 안 되는 것들이죠.”

국내에서조차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국 고유의 창극이 오페라 연출의 세계적 거장의 손에 빚어져 해외로 진출한다. 9월 초연 예정인 국립창극단의 ‘창극, 수궁가’ 연출을 맡은 독일의 아힘 프라이어 씨(77).

준비를 위해 방한 중인 그는 2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인터뷰를 갖고 “한국 전통예술에 감탄했다. 기존 창극이나 서구의 오페라와도 다르지만 한국적인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라이어 씨는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제자로 50여 년간 150여 편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지난해엔 3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연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았다. 프라이어 씨와 수궁가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그는 지난해 4월 한국인 부인이자 독일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에스더 리 씨(46)를 따라 방한해 당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창극 ‘춘향 2010’을 관람했다. 그는 방한 기간에 작품 콘셉트를 구상하는 한편 판소리와 창극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26일에는 송순섭 명창의 박봉술제 수궁가 완창판소리를, 27일에는 이번 작품의 주연인 안숙선 명창의 수궁가 완창을 관람했다. 그는 “한국어를 모르지만 내용을 생생히 알 수 있었다. 느낌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판소리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살짝 공개한 ‘창극, 수궁가’의 전개 방식은 흥미롭다. 안 명창은 높이 3m의 거대한 치마를 입고 작중 화자로 등장하며 수궁가의 가면을 쓴 다른 등장인물들이 치마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형식이다. 1인 오페라로 불리는 고전 판소리의 형태에 극적인 요소를 버무린 것이다. ‘미스터 래빗과 드래건 킹(Mr.Rabbit and the Dragon King)’이라는 영어 제목도 붙인 이 작품은 9월 8일부터 1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되고 12월 독일 부퍼탈 시립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 무대에 오른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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