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어린이 “노래가 있어 말못할 고통도 이겨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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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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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 오디션… 20여명 합격

“노래할 땐 하나도 안 아파요.”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서 열린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한 어린이들. 왼쪽부터 황효은, 이상욱, 이승희, 진연호, 유아영, 최지민.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노래할 땐 하나도 안 아파요.”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서 열린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한 어린이들. 왼쪽부터 황효은, 이상욱, 이승희, 진연호, 유아영, 최지민.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건물에 딸과 아버지가 두 다리를 절뚝이며 나란히 들어섰다.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강당 앞에서 강수진 양(13)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나 목소리 괜찮아?” 강대생 씨(47)가 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게 무리해서 연습하지 말라니까….”

근육이 굳어가는 근위축증에 걸린 수진이는 걸을 때마다 두 다리를 절뚝인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도 그렇게 걷는다. 온몸이 마비되면서 호흡까지 어려워져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병이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이 버거운 현실을 수진이는 노래로 버텨왔다. “눈을 감고 노래 부르는 상상을 하면 무대에서 멋진 춤을 추고 있죠. 친구들도 저를 너무 좋아해요.”

이날 수진이는 그토록 기다려 온 무대에 섰다. 백혈병이나 소아암 등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이사장 유명열)이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5명을 포함해 1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수진이는 맑은 목소리로 팝송 ‘오버 더 레인보’를 열창했다.

노래로 살아갈 힘을 얻는 아이는 수진이뿐만이 아니었다. 목발을 짚고 나온 진연호 군(9)은 ‘목소리가 작아 가사 전달이 잘 안 된다’는 지적에 “노래는 못해도 화음은 잘 맞춰요”라며 쌩긋 웃었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앞을 못 보는 한 피아니스트 지망생은 베토벤 교향곡을 선보였고 휠체어에 탄 한 어린이는 “항암치료를 잘 받아서 꼭 뮤지컬 가수가 되겠다”며 열의를 보였다. 난치병을 앓던 15세 아들을 지난달 떠나보낸 한 아버지는 객석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을 응원하며 박수를 쳤다.

가수 빅뱅과 세븐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 이규원 씨와 국립오페라단 성악가 김관현 씨 등 심사위원들은 “기본기가 많이 약한데 잘 따라올 수 있겠어요?”라며 날카로운 지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지원자는 “열심히 할 건데… 아저씨가 가르쳐 주시면 안돼요?”라며 울먹였다. 결국 지원자 대부분이 합창단에 합류했다. 이날 오디션을 통과한 ‘완전 초보’ 단원 20여 명은 앞으로 유명 뮤지션들의 ‘박칼린식’ 집중 지도를 받는다.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연습해 5월 말 무대에 오르고 음반도 낸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이들과 함께할 일반인 단원과 ‘재능 기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어린이날 공표 90주년을 맞아 합창단 공연을 기획한 재단은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Make-A-Wish, 희망’ 캠페인도 다음 달 29일부터 90일간 진행할 예정이다.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 참여 문의 02-3452-7474, www.wish.or.kr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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