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 외로움, 축구공 있어 견뎌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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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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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
동호회 만들어 7년여 활동
“16강? 한국과 같이 갔으면”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여술근린공원에 모인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 축구 동호회원들이 경기에 앞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이모스 카리 씨(오른쪽)는 2005년부터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어 오고 있다. 평택=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여술근린공원에 모인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 축구 동호회원들이 경기에 앞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이모스 카리 씨(오른쪽)는 2005년부터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어 오고 있다. 평택=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언젠가 관중이 꽉 들어찬 푸른 잔디구장에서 경기할 날을 저들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13일 오후 5시경 경기 평택시 포승읍 여술근린공원 축구장에는 까만 피부의 건장한 청년들이 하얀 유니폼을 입고 달리고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나이지리아인 위즈 이헤즈리카 씨(34)가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날 흙바닥에서 먼지를 날리며 축구공을 차던 선수들은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 선수와 감독을 비롯해 응원하러 온 이들까지 합하면 서른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날씨만 좋으면 일요일마다 평택과 안산에 모여 훈련을 한다.

축구를 국민 스포츠처럼 사랑하는 나이지리아인들에게 장소는 중요치 않았다. 경기 평택시와 안산시 인근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함께 만든 축구 동호회 ‘나이지리아 안산’은 벌써 생긴 지 7년이 넘었다. 서울과 부천, 동두천에도 동호회가 꾸려져 있을 정도다. 사정상 멤버가 자주 바뀔 수밖에 없지만 이들에게 축구는 외지에서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자 꿈이다.

이날 훈련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축구장을 찾았다. 오쿤보 노사 씨(30)는 안산의 한 교회에서 한국인 김수정 씨(27·여)를 만나 지난해에 결혼했다. 그에겐 축구 훈련이 향수병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됐다. “한국에 온 지 2년 됐는데 아직 나이지리아에 있는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셔올 준비가 덜 됐어요.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다 보면 이런 근심까지 다 털어버릴 수 있어서 좋아요.” 막 경기를 마친 노사 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직 한국에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피레스 이노센트 씨(24)는 프로 축구선수가 꿈이다. 9세 때 축구를 시작한 그는 22세 때 이집트 2부 프로리그에 있는 ‘와디 데글라 스포르팅 클럽’에 입단해 2년 6개월 동안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했다. 한국의 K리그에 진출할 꿈을 안고 온 이노센트 씨는 이날 훈련에서도 유독 돋보였다. 평택지역 축구동호회인 ‘포승 FC’와의 경기에 나서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에서 프로 선수로 뛰고 싶다는 이노센트 씨는 “아직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나이지리아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훈련에 나와 소식을 들으며 적응하는 중”이라며 “언젠가는 꼭 입단테스트를 받고 K리그에 진출하는 게 목표”라고 당차게 말했다.

12일 나이지리아가 아르헨티나에 0-1로 패하긴 했지만 이들은 한국과의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렵겠지만 한국전을 꼭 이기고 16강에 올라갈 겁니다. 물론 한국도 같이 올라가면 더 좋겠죠.” 안산의 나이지리아인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나불 워코로 씨(44)는 23일 새벽에 열릴 한국과의 경기를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훈련이 끝난 뒤 그는 “함께 어울리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지만 이렇게 훈련을 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축구선수가 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죠. 모두들 희망을 품고 축구장을 찾는 겁니다”라며 웃었다.

평택=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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