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흔들리는 나뭇가지만 봐도 눈물 핑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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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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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씨 영화 ‘詩’로 16년만에 스크린 컴백… 詩에 빠진 66세 女心연기

“영화 주인공은 또 다른 내 모습”  영화 ‘시’로 1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윤정희 씨는 “내 본명 ‘미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평생 찾고 싶었던 내 모습을 찾았다”며 “꿈을 되찾고 싶은 모든 관객에게 권한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영화 주인공은 또 다른 내 모습” 영화 ‘시’로 1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윤정희 씨는 “내 본명 ‘미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평생 찾고 싶었던 내 모습을 찾았다”며 “꿈을 되찾고 싶은 모든 관객에게 권한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편 앞에서 연기 연습을 했어요. 한참 물끄러미 보더니 ‘좀 더 자연스럽게 못 해?’ 하더라고요. 그게 맘처럼 쉽나요. 40년 넘게 ‘예쁘게’ 연기하는 데만 익숙했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평소처럼’ 얘기한다는 게….”

배우 윤정희 씨(66)가 1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5월 13일 개봉하는 이창동 감독의 ‘시(詩)’에서 주인공 ‘미자’ 역을 맡은 그를 14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홀몸노인 간병을 하며 교외에서 중학생 손자와 오붓이 살아가던 66세 여인이 난생처음 시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이야기. 윤 씨의 본명은 주인공과 같은 손미자(孫美子)다. 피아니스트인 남편 백건우 씨(64)는 윤 씨와 함께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나서 “그냥 딱 당신이네”라고 했다.

“제가 지금도 매일 꿈속에서 살거든요.(웃음) 남편이랑 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면 그게 신기해서 막 신나하고 그래요. 여행 가면 혼자 너무 붕 떠 있어서 ‘이제 그만 좀 지상으로 내려오세요’라는 싫지 않은 핀잔도 듣죠.”

남편 백건우 씨 시나리오 읽고 “딱 당신 이야기네”
한컷 37번 찍기도… “한번 가본 노래방 연기 힘들어”


동네 문화강좌에 나갔다가 시의 매력에 푹 빠져 길가에 앉아 비를 맞으며 시상(詩想)을 고민하는 여인의 모습. 윤정희이기에 어색하지 않다. 영화에서 ‘시 초보’인 그는 남편의 반주로 미당 서정주 시 낭송 음반을 내기도 한 시 애호가다. 카페 창밖에 걸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아름다운 것만 보면 왜 이렇게 눈물이 핑 도는지…”라고 말하는 그의 두 볼이 소녀처럼 발그레했다.

“몇 번 거절하다 보니 16년이 흘렀어요. 전에도 작품을 섣불리 택한 적은 없지만 이제는 정말 마음에 꼭 맞는 영화만 해야 할 때잖아요.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을 쏟았지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1967년 12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이래 3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이지만 16년 만의 현장이 익숙하지만은 않았다. 동시녹음을 하는 것도 처음. 변두리 중산층 여인처럼 털털하게 말하는 것도 낯설었다. 밭에서 일하는 여인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러 찾아가는 장면만 서른일곱 번을 찍었다. 태어나 딱 한 번 가본 ‘노래방’ 연기도 힘들었다.

“마이크를 쥐고 몸을 흔들어야 하는데…. 영 어색했어요. 노래방은 10여 년 전 친구들이랑 한 번 가본 게 다거든요. 촬영지 호텔 노래방에서 연습해 보려 저녁에 몰래 내려갔는데 스태프가 ‘선생님 노래방 가셨다’ 하며 우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그냥 포기하고 재미나게 놀았죠.”(웃음)

고요할 정(靜)을 쓴 예명은 데뷔 때 스스로 지었다. 그는 “직업은 배우지만 요란한 영화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인생을 조용히 꾸려가고 싶었다”고 했다. 미용실에 가본 적도, 요란하게 화장을 해본 적도 없다. 머리는 남편이 다듬어주고, 로션이나 팩 같은 화장품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쓴다.

영화 ‘시’에서의 시는 ‘가슴속에 남겨둔 인생의 마지막 소중한 가치’를 뜻한다. 윤정희 인생의 ‘시’는 무엇인지 물었다.

“당연히 가족이죠. 영화는 그 다음입니다. 영화 촬영 기간에 미리 양해를 구해 딱 세 번 쉬었어요. 미국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 일본 도쿄에서 남편이 가진 중요한 연주회에 빠질 수 없었거든요. 어서 영화를 보고 싶다며 안달복달하고 있습니다.(웃음) 제 오랜 팬 여러분도 잊지 않고 영화관에 찾아와 주시리라 믿어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동영상 = 배우 윤정희 인터뷰, ˝처음 남편 앞에서 연기 연습을 했어요˝


▲동영상 = 배우 윤정희 16년 만의 복귀작인 영화 `시`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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