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배화여고 ‘특별한 아침’… 학생 251명 교사 14명 장기기증 서약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배화여고로 향하는 언덕길. 이날따라 등굣길 학생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늦어서 뛰어가는 학생도 있고 서로 오순도순 얘기하며 걸어가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여느 학교의 등교 모습과 비슷했지만 이날은 배화여고 학생들에게 가장 ‘특별한’ 아침이었다.

오전 8시 20분. 대강당에는 체크무늬 치마와 진녹색 카디건 교복에 리본으로 깔끔히 마무리한 차림의 배화여고 전교생 1100여명이 모두 모였다. 매주 수요일 아침에 실시하는 종교 수업인 ‘채플’ 시간이었지만 이들은 항상 가지고 오던 성경책 말고 다른 종이를 하나 더 들고 모였다. 장기기증 희망신청서였다.

장기기증 등록기관인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과 배화여고는 1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등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장기기증 신청을 받았다. 지난달 초부터 협의해 학생들에게 사전 안내를 한 다음 이날 장기기증 신청서를 받았다. 학생들은 각막기증, 뇌사시장기기증, 사후조직기증 등에서 자신이 원하는 항목에 표시하고 채플 수업이 끝난 뒤 장기기증 접수함에 넣었다. 이날 배화여고에서는 학생 251명과 교사 14명을 포함해 총 265명이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장기기증에 참여한 여학생들은 빨간색 ‘희망의 씨앗’ 배지를 받았다. 학생들은 진녹색 교복에 빨간색이 어울린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2학년 성문경 양(17)은 “원래 꿈이 사회복지사였는데 그동안 각막이 없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며 “이번 기회에 그동안 생각만 하던 각막 기증에 나섰다”고 말했다. 1학년 손민지 양(16)도 “나는 모든 걸 다 가졌으니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배화여고 이기성 교목(42)은 “학생들이 장기기증에 이렇게 많이 참여할 줄 몰랐다”며 “나눔을 실천한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환히 비춰줄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고마운 심정을 전했다.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의 조정진 이사는 “생각보다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았던 데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기증 등으로 장기기증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시선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증 이후 ‘장기 나눔’의 정신이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