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가요제 열어 못다한 孝 속죄하렵니다”

  • 입력 2009년 4월 27일 02시 58분


세계효운동본부 추진위원장 트로트가수 진요근 씨

경로 孝잔치만 200회… “해외 무대로 孝수출할 것”

소년은 한밤에 충남 공주시 계룡산 갑사 쪽에서 동학사 쪽으로 정상을 넘었다. 남매탑 부근에 이르러 어머니가 계신 대전의 불빛이 보이자 목청이 터져라 “어머니”를 외쳤다. 손자를 찾아 산을 헤매던 할머니는 소년을 부둥켜안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27일 대전시청에서 창립식을 갖는 세계효운동본부의 추진위원장을 맡은 트로트 가수 진요근 씨(47)의 초등학교 3학년 때 기억이다. 7남매 가운데 넷째인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홀로 떨어져 갑사 인근 산골에서 부모 대신 외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랐다. 개구리와 뱀을 잡아 관광객에게 팔아 공책과 도화지를 사야 했지만 원망 대신 ‘그리움’만 사무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과 겨우 만났지만 대전상고 2학년 시절 “스타가 돼 돈을 많이 벌어 효도하겠다”며 상경했다. 1981년 당대 최고 스타인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씨의 상대 역을 찾는 한국영화제작자협회의 신인 배우 모집에서 선발됐다. 하지만 출연한 10여 편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단역 정도였다.

자나 깨나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던 어머니 김경순 씨는 영화 ‘만추’에서 김밥 장수역으로 나온 아들을 보고 한때 식음을 놨다고 한다. 단역도 그렇거니와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벽을 절감한 그는 본래의 꿈이었던 가수로 전업했다. 어린 시절 계룡산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무던히도 노래를 불렀다. 직접 작사한 그의 히트곡 ‘불효’는 그 시절의 자화상이다. ‘지게 받쳐놓고/어머니가 그리워 하늘을 바라보면/가까이 왔다가 멀어지는/보고 싶은 그 얼굴이/이 몸이 잘되라고/그 얼마나 기도했던가/가슴을 치며 가슴을 치며/울면서 불러 봐도/오지 않는 어머니….’

1984년 음반 ‘비워둔 옛 자리’로 데뷔했지만 찾는 사람은 없었다. 150만 원의 월세 보증금을, 스타를 만들어 준다는 사기꾼에게 털린 뒤 신문배달 연탄배달 등 10여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열흘 이상 물과 라면으로 배를 채우다 쓰러지기도 했다. 세탁 등을 하며 헬스장에서 지낼 때 밤에 노래를 불러 주민들의 항의로 쫓겨나기도 했다.

1991년 3집 ‘불효’로 신인가수상을 차지했고 김정수 씨가 ‘당신’으로 가수왕이 되던 그 이듬해에 트로트 부문 최우수 가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무명 10년 만의 햇빛도 잠시였다. 1993년 아버지 진공섭 씨가 췌장암으로 별세하고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 병환도 깊어지자 연예계 생활을 접고 병간호에 매달렸다.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고 실명까지 한 어머니는 2004년 아들의 재기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진 씨는 ‘아니야’로 2007년 성인가요음악대상에서 10대 가수로 선정됐다.

“부모님 환갑잔치 한번 열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는 진 씨는 무료 경로 효 잔치를 200회 이상 연 공로로 3월 대전시의 ‘효 홍보대사’가 됐다.

진 씨는 “효도를 확산시키기 위한 세계효운동본부 창립에 이어 5월 30일 대전동물원에서 ‘제1회 대전 효 가요제’를 연다”며 “이런 가요제를 타 시도와 해외 한인타운으로 확대해 ‘효 수출’의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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