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국민권익위원장 “부패 척결은 경제 살리기의 인프라”

  • 입력 2008년 3월 21일 02시 58분


양건 초대 국민권익위원장이 2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집무실에서 취임 후 동아일보와 한 첫 인터뷰에서 핀란드 사례를 들어 “청렴은 국가가 잘살기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라고 역설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양건 초대 국민권익위원장이 2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집무실에서 취임 후 동아일보와 한 첫 인터뷰에서 핀란드 사례를 들어 “청렴은 국가가 잘살기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라고 역설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양건 국민권익위원장의 집무실 책상 위엔 반듯하게 놓인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였다. 조선시대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지방 관리들이 지켜야 할 지침에 대해 쓴 책이다. 양 위원장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다산이라고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현 정부 출범 후 기존의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실 소속 행정심판위원회 등 3개 기관이 합쳐진 곳이다. 공직자의 부패 방지가 주요 기능 중 하나다. 평생 법공부에만 매달려 온 양 위원장은 “환갑을 넘기니까 많은 생각이 들더라. 법공부만 하고 살아야 되나 싶기도 하고. 이론과 주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실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군자의 학(學)은 수신(修身)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牧民)”이라는 목민심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목민’이 넓은 의미로는 ‘사회적 실천’이라고 생각해 공직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양건 위원장
△1947년 7월 25일 함경북도 청진 출생
△1966년 경기고 졸업
△1970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79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1976∼1985년 숭전대(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1985∼2008년 한양대 법학과 교수
△1998∼199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 법위원장
△2001∼2003년 한국교육법학회 회장
△2004∼2005년 한국공법학회 회장
△2004년∼현재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부위원장
△2005∼2007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기능이 서로 다른 3개 기관이 하나로 합쳐졌다.

“새 정부가 내세운 정부조직 축소 방침의 대표적 사례다. 서로 기능이 다른데 왜 통합하느냐는 부정적 의견도 있었고, 각 기관의 이기주의 차원에서 통합반대 의견도 있었던 걸로 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해서는 ‘원 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공직자 부패방지, 국민고충처리를 따로 했는데 기관 통합으로 큰 틀 안에서 연계 처리할 수 있다. 어떤 민원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는 건 그만큼 공무원들의 재량권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재량권은 또 공직자 부패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법조 실무가가 맡아온 자리를 교수 출신이 맡아서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검찰 등 법조 실무가가 맡을 경우와 교수가 맡을 경우 각각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학자 출신이 상대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으로 내다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검찰 출신 같은 실무가들은 관료 중심의 사고를 하지만 나 같은 학자 출신은 국민의 시각에서 볼 수 있어 더 나은 측면이 있다.”

―공직자 부패 방지나 사후 적발을 위해서는 내부자 고발이 중요하지 않나.

“한국 사회에선 내부자 고발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 집단의 이익에 배치되는 고발을 하는 걸 부도덕하게 보는 정서가 강하다. 그래서 공익 차원에서 필요한 고발까지도 꺼리게 된다. 공익을 위한 고발은 높이 평가해 주고 진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 교과서에도 공익을 위한 고발의 중요성을 알리는 내용을 넣을 필요가 있다.”

―당면한 주요 현안은….

“온라인으로 민원을 접수하고 있는데 하루 800건 넘게 들어오고 있다. 새 정부의 과제 중 하나가 경제 살리기인데 이와 관련해 소상공인 자영업자 서민의 불만이나 의견을 듣기 위해 국민제안 코너를 만들었다. 6월까지 애로사항을 집중적으로 접수해 파악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 국민권익위를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이제 취임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웃음). 국민권익위의 사명은 억울함이 없는 나라, 맑고 깨끗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여러 행정기관이 많지만 국민에게 가장 가까운 기관이 국민권익위라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관으로 만들고 싶다. 우선은 위원회가 하는 일을 국민에게 많이 알릴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모델로 생각해 둔 것은….

“흔히 부패 문제는 사회 정의나 도덕성의 문제로만 보기 쉬운데 경제를 살리고 잘살기 위해서도 부패가 없는 깨끗한 사회가 돼야 한다. 대표적으로 핀란드 사례를 생각하고 있다. 핀란드는 700년간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후진국이었는데 지금은 국민소득 4만 달러에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청렴도를 자랑한다. 청렴도가 높아지면 국민소득도 높아진다. 청렴은 나라가 잘살기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장을 줄 때 특별히 당부한 점이 있나.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이번 정부는 부패 문제에서 자유롭고 근본적인 부패 원인은 제거된 상태’라고 얘기했다. 앞으로 필요하다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께 직접 의견도 전달할 것이다.”

양 위원장은 1990년대 초반엔 “국가보안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진보적 성향을 보였으나 노무현 정부 때는 당시 여권이 주도한 국보법 폐지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는 국보법이 남용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어서 국보법 폐지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북(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한 살 때인 1948년 가족의 품에 안겨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한으로 내려온 과정을 설명했다. 인터뷰 도중 “나는 북한에 대해 혼재된 감정이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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