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9월 19일 03시 0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3일 오후 2시 창경궁 명정전(明政殿·국보 제226호)에서 여는 어연례에 참여하는 국왕, 왕세자, 문무백관 등을 맡을 사람을 시민 중에서 뽑았다.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정 군이 왕세자 공모에 신청한 까닭이 뭘까. 13일 정 군과 할아버지 정한연(67·퇴직 공무원) 씨, 아버지 정동환(40·은행원) 씨를 함께 만났다. 궁금증이 풀렸다.
할아버지는 시민단체 ‘한국의 재발견’의 열혈 궁궐지킴이, 아버지는 문화유산 답사 마니아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삼대의 문화재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손자 정건혁 군
“어휴, 할아버지랑 아빠랑 왕릉만 몇 번을 갔는지 몰라요.”
건혁 군이 지겹다는 듯 투정을 부린다. 할아버지가 핀잔을 준다. “더 가야 돼. 모름지기 문화재란 가고 또 가봐야 전에 못 봤던 아름다움이 보이는 법이야.”
“요즘 가본 곳이 서오릉 경순왕릉 사도세자릉…. 경순왕릉은 신라 왕릉 중 경주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유일한 왕릉이고요.” 술술 설명을 풀어낸다. “잡상 아세요? 궁궐 지붕 위에 앉아 있잖아요. 맨 앞에 삼장법사, 그 다음은 손오공, 사오정….” 잡상은 서울 궁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추녀마루 위 장식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웬만한 사람은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또래들이 게임과 만화에 몰두할 때 정 군은 세자의 곤룡포를 입어볼 기회를 얻었다. 정 군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라며 밝게 웃었다.
○할아버지 정한연 씨
할아버지 정한연 씨는 2005년 40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쳤다. 마음이 허전했다.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을 깊이 배워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올해 1월 ‘한국의 재발견’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궁궐지킴이는 관람객에게 궁궐의 유래와 역사를 설명하는 자원봉사 활동. 아홉 달 동안 엄격한 교육과 실습을 거쳐야 한다. 마침내 이달 15일. 정 씨는 수료식을 마치고 경복궁 궁궐지킴이로 다시 태어났다.
“경복궁을 하루 세 번 돌 때도 있죠. 몸은 고단하지만 사람들이 제 설명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솟습니다.” “근정전 난간 기둥을 둘러싼 십이신상은 때론 우락부락하게, 때론 아기자기하고 해학적으로 우리 미감을 표현했다”며 이어가는 정 씨의 경복궁 예찬은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 정동환 씨
동환 씨는 아버지 정한연 씨와 아들 건혁 군의 숨은 조력자. 아들에게 어연례 참가를 권했고 아버지에게 궁궐지킴이 활동을 소개했다.
요즘은 아버지의 활동을 ‘테스트’하는 재미에 빠졌다. “경복궁 근정전 답도(踏道·층계 가운데 장식한 돌)에 왜 봉황이 새겨져 있는지 묻는 식이죠.” 동환 씨가 짓궂게 웃는다.
동환 씨는 가족을 이끌고 주말마다 전국 유적지로 떠난다. 최근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 김제시 금산사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남 화순군의 고인돌 유적지 등을 답사했다. 그의 또 다른 취미는 ‘사람들이 잘 안 사보는’ 문화재 전문서적 모으기. 도록부터 연구서까지 옥탑방에 가득하다.
삼대는 시간 날 때마다 옥탑방에서 책읽기 삼매경에 빠진다. 동환 씨는 10월 아들 건혁 군과 함께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에 참가할 계획이다.
“우리 가족 자랑요? 요즘 삼대가 모여 공통의 관심사를 놓고 얘기하는 가족이 드물잖아요. 문화유산에 관한 한 우리 삼대에는 세대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