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고문사건」 조영황변호사 「아름다운 퇴장」

  • 입력 1999년 6월 28일 19시 34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공소유지 담당변호사로 특별검사 1호를 기록한 변호사. 백화점 사기세일 사건을 승리로 이끌어 ‘소비자 변호사’로 유명했던 법조인.

조영황(趙永晃·58)변호사, 그가 떠나는 뒷모습은 정녕 아름답다.

아직도 한참 더 일할 나이지만 그는 30일 변호사 사무실을 정리하고 29년간 해온 변호사 일을 끝내기로 했다.

그는 이제 법원이 없는 고향(전남 고흥)에서 간단한 민형사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는 시군판사로 봉사하기로 했다.

아쉬워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조변호사는 “떠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인데 힘이 다해 어쩔 수 없이 떠나면 그것이 어찌 선택이냐”고 말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런 날을 준비해왔다. 그는 6년 전부터 적금을 들어 모은 돈으로 지난달 20여년씩 일해온 두 직원에게 퇴직금을 주었다.

조변호사는 88년 부천서 성고문 재정신청사건 문귀동(文貴童)피고인의 공소유지 변호사로 선임됐다.

그는 당시 문피고인을 조사하면서 그에게 변호사를 참여시켜 공정한 진술기회를 주고도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89년에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시민의 모임’ 회장과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장을 지냈다. 92년에는 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사기세일을 일삼는 백화점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이김으로써 소비자운동의 전기를 마련했다.

조변호사는 학력의 벽을 뛰어넘은 법조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중졸이 최종학력이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69년 제1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후 그는 변호사 일에만 매진했다. 후배 정성광(鄭聖光)변호사는 “조변호사님은 평생 정치권을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사건브로커도 쓰지 않았으며 판검사에게 사건 청탁을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91년 6월부터 94년 3월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5시 절에 찾아가 천일기도를 올리며 세상의 유혹을 물리쳤다”고 말했다.

92년 10월부터 같은 빌딩의 윤기원(尹基源)변호사 등과 함께 점심시간에 외식 대신 도시락을 이용한 일화도 감동적이다. 그렇게 아낀 점심값을 매달 경기 성남시의 정박아 시설에 성금으로 전달해온 것.

그는 자신의 처지를 기억해 고향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보냈다. 92년 고향사람들이 그의 공적을 기려 공덕비를 만들겠다고 나선 일이 있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조변호사는 직접 고향에 내려가 “공덕비를 만들면 다시는 고향에 오지 않겠다”며 말렸다.

윤변호사는 “자기 일을 훌륭하게 마치는 것이 훌륭하게 일하는 것 못지 않게 어렵다”며 “조변호사님은 처음과 끝이 똑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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