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50돌]「74세 현역」폭파전문가 조원득씨

  • 입력 1997년 5월 2일 20시 07분


<<2일은 대한건설협회 창립 50주년, 즉 한국건설이 반백년을 맞은 날이다. 평생을 현장에서 한국건설사와 함께 해왔고 지금도 뛰고 있는 「74세 현역」을 소개한다.>> 오전 6시. 아직 해가 솟아오르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극동건설의 호남선 송정리∼목포간 복선화공사현장 인부 趙源得(조원득·74)씨는 젊은 동료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나섰다. 『흙차가 현장에 오기 전에 가봐야 해. 이놈들이 잡석이나 나무같은 걸 섞어 놓거나 흙의 양을 적게 해서 오는 일이 많거든』 조씨는 지난 42년 일본인 청부(건설)회사의 잡역부로 건설현장에 뛰어든 이래 55년간 쉬지 않고 현장을 지켰다.14세때 소년가장이 됐던 조씨는 체력과 기술만 있으면 좋은 수입이 보장되는 건설업을 택했다. 타고난 부지런함 때문에 그는 일본인의 눈에 띄어 황소 한마리값이 3백원이던 지난 43년 4천원이라는 거액의 특별상여금을 받기도 했다. 지난 83년엔 강화도 교통면 농경지정리작업을 하면서 농번기 전에 공사를 마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주민들이 당시 현장근로자에 불과한 그의 공덕비를 세워주기까지 했다. 보통학교 출신인 조씨는 건설현장에 뛰어들기 전 일본사법서사회사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일본어와 민법 민사소송법을 공부,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64년엔 일반대학 졸업자들도 따기 어려운 화약류관리 보안책임자 자격을 독학으로 따냈다. 그는 지금 국내 최고참의 폭파전문가로 건설업계에 알려져 있다. 한학에도 조예가 있어 제갈량의 출사표 정도는 원문으로 외우고 다닐 정도. 극동건설엔 지난 70년 현장인부로서는 가장 높은 직위인 「주사」로 입사, 88년 65세로 남보다 늦은 정년퇴직을 할 때의 직위도 역시 「주사」였다. 『현장에서 일하는 게 좋거든. 그래서 회사에서의 권유도 있었지만 주사자리를 고집했지. 승진했더라면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할 수 없었을 거야』 조씨의 공로를 인정한 극동건설 金用山(김용산)회장은 조씨가 원할 때까지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그래서 조씨는 65세까지 근무한 유일한 현장직원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퇴직한 후에도 현장채용인 자격으로 이 회사 건설현장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조씨는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아들은 둘다 서울에 있는 시중은행 지점장으로 근무중이고 딸은 유치원 원장. 『자식들은 제발 일좀 그만두라고 성화지만 나는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아쉬워. 그래서 아침에 보이는 햇빛이 제일 반가워. 일을 다시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다시 출근길 자전거에 올랐다. 『아침에 일찍 나오는 차가 없어 소장님께 졸라서 얻은 자전거야. 「자전거값」을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지』 〈황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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