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미로 같은 정치[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106〉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2일 23시 07분


출구 없는 미로 같은 정치

“나가는 길요. 출구가 어디죠?”

―세르게이 로즈니차 ‘두 검사’


세르게이 로즈니차 감독의 영화 ‘두 검사’는 1937년 소련의 스탈린 대숙청 시기를 배경으로, 전체주의의 폭압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가를 꼬집는 작품이다. 영화는 숙청돼 죽어가는 한 늙은 죄수의 피로 눌러쓴 편지가 젊은 감찰 검사 코르네프의 손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죄수와의 면담을 통해 고문의 흔적을 발견한 코르네프는 조직적인 부패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수석 검찰총장 비신스키까지 찾아가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 당대 소련의 지독한 관료주의와 부패 속에서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좁은 복도와 굳게 닫힌 철문, 계단을 마주한다. 로즈니차 감독은 절제된 시선과 폐쇄적인 공간 연출로, 코르네프의 끈질긴 추적 과정이 결국 출구 없는 관료주의의 미로 속에서 소모되는 시시포스의 형벌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2025년 제78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하얀 레닌 흉상 앞에서 코르네프가 한 사내를 만나는 장면이다. 길을 잃은 그 사내는 코르네프에게 묻는다. “나가는 길요. 출구가 어디죠?” 순간 코르네프가 걸어왔던 길들이 출구 없는 미로였다는 사실을 그 질문 하나가 끄집어낸다. 끝내 그는 진실을 폭로하지만 해피엔딩 따위는 없다. 처음 죄수와 면담하기 위해 들어섰던 감옥의 철문을 이제 코르네프가 죄수가 되어 들어가는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한 숙청된 죄수에서 코르네프로 이어지는 이 무한 반복의 미로는 결국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어떻게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는가를 보여준다. 민심을 읽지 못하고 정쟁에만 휩싸인 정당과, 당당히 진실과 마주하지 못하는 권력의 불안함이 무한 반복되는 미로 같은 우리의 정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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