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특수 사라져도 이어지는 것… 생명의 뿌리에 감사하는 마음[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동아일보
입력 2026-05-11 23:062026년 5월 11일 2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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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문화 ‘유교 탈레반’ 비판 받아… 지킬 핵심은 형식 아닌 뿌리 의식
보본반시, 생명 뿌리 잊지 말란 뜻… 유교의 孝 넘어 인간의 보편윤리
살아계신 부모 섬기는 어버이날… 감사 형식 달라져도 마음 이어져
조상을 기리고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엄격한 예법에 따라 차례를 지내는 모습(첫 번째 사진). 올해 2월 설 연휴에 차례를 지내는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붐비고 있다(두 번째 사진). 어버이날 최고 선물은 카네이션이 아니라 현금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동아일보DB
《어버이날에 담긴 보본반시 정신
최루탄이 난무하던 1980년대 대학 수업은 파행을 거듭하며 정상적인 강의가 이뤄지지 못했던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3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까지 동양철학 강의에서 배웠던 ‘보본반시(報本反始)’라는 네 글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잊혀지지 않는다. 생명의 근원에 보답하라는 뜻이 좋아서 기억에 오래 남은 듯하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보본반시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자신을 있게 한 근본(하늘·조상·부모)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생명의 시작인 근본을 소중히 여기며 추모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이야기다. 이는 효와 제사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이다. 설과 추석에 행하는 차례와 각종 제례의 목적은 보본반시, 즉 내 존재의 시작인 조상이나 천지만물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는 데 있다.
최근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늘고 있다. 유교적 전통이나 예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들을 ‘유교 탈레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엄격한 제사의 형식은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유교는 지나치게 예라는 형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도가 사상을 전공한 한 교수는 유교와 도교의 차이점을 밝히며 “유교의 예에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억지스러움이 들어 있다”고 했다. 가령 부모의 장례식에서 눈물이 나지 않더라도 유교적 관점에선 통곡을 해야 효를 다하는 것이라 여긴다. 반면 도가 사상가 장자는 자신의 부인이 죽었을 때 무덤에서 울지 않고 오히려 흥겹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요즘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통해 극진히 잘해 봤자 돈이 나오는 것도, 복이 오는 것도 아니라는 타산적인 생각이 생겨난 탓도 있다. 인터넷상에서 100년 전 미국과 한국을 검색해 보면 조상에게 매년 제사를 지내던 우리 선조가 살던 초라한 초가집의 사진과 기독교를 믿는 미국인들이 세운 화려한 빌딩의 사진이 대비돼 나온다. 형편이 좋은 사람은 명절마다 해외여행을 떠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명절에 모였다가 불화로 다툼이 생기는 뉴스도 종종 접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어르신들은 재산을 자식에게 바로 물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수중에 돈이 없는 순간 자식에게 버림받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까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재산을 증여하지 않는 일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유교에서 말했던 전통적인 효를 통해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을 갖던 시대는 사실상 지나갔다. 돈이 최고인 시대에 효는 부모의 재산이 있을 때만 유효한 시대가 됐다.
5월 8일 어버이날은 미국에서 유래됐다. 1908년 미국의 애나 자비스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며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나눠줬는데, 1914년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공식적인 어머니날(Mother’s Day)로 정했다. 한국에는 1925년경부터 카네이션이 들어와 부모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꽃으로 쓰였다. 이때부터 살아계신 부모님께는 빨간색 카네이션을,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흰색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
보본반시의 정신은 꼭 유교의 제사문화로만 보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생 자식 사랑에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부모님의 맹목적인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으로 봐야 한다. 명절에 고향을 찾고 산소에 벌초를 하고 차례를 지내는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생명의 근본인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은 동서양을 떠나 인간다움의 기본이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이 더 잘 안다. 무거운 기저귀를 갈면서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느라 밤잠을 설쳤던 젊은 시절 부모님의 노고를 되새겨 보자. 어버이의 그 큰 사랑에 비하면 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자식의 마음은 늘 부족하기만 하다. 생명의 뿌리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은 유교의 핵심인 효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윤리다.
어버이날에 돌아가신 조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모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보본반시가 제사를 통해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보답하는 의식이라면, 어버이날은 살아계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날이다. 굳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눈앞에 살아 계시는 생명의 뿌리인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사실은 부모는 자식의 영원한 후원자라는 점이다. 어버이날은 단순히 기념일이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카네이션을 직접 가슴에 달지 않고 바구니에 담아 선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가 요즘은 용돈이나 선물, 여행, 외식, 건강식품 등으로 다양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유교의 보본반시 정신은 그 모습은 달라져도 여전히 어버이날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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