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사 이야기]6·10만세운동 계기된 ‘마지막 황제’ 순종 장례식

  • 동아일보

장례 행렬 맞춰 대규모 운동 계획
독립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민족주의-사회주의 세력도 연대
일제 감시로 전국에 확산은 안 돼

1926년 6월 10일 서울 시내를 통과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 행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날 학생과 시민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6·10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26년 6월 10일 서울 시내를 통과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 행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날 학생과 시민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6·10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26년 4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는 그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순종은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대한제국의 황제였습니다. 고종의 아들로 태어나 황태자를 거쳐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가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는 대한제국이 외세의 침략 속에서 점차 힘을 잃어 가던 때였습니다. 순종은 어린 시절에는 을미사변으로 어머니 명성황후를 잃는 큰 아픔을 겪었고 황제가 된 뒤에도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압박 속에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1926년 4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슬픔을 넘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 순종의 장례를 계기로 준비된 만세운동

독립운동 세력은 순종의 장례 행렬에 맞춰 서울과 지방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했습니다. 3·1운동의 불꽃을 다시 피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세력이 힘을 모았습니다. 사회주의 계열은 지도부 역할을, 민족주의 계열은 격문 인쇄와 연락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비롯한 학생 단체들이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했습니다. 6·10만세운동에서 학생들은 만세운동의 계획을 함께 세우고 실천에 옮기는 당당한 주체이자 핵심이었습니다.

3·1운동에 놀랐던 일제는 이러한 움직임을 미리 알아채고 철저히 감시했습니다. 결국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의 지도자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만세운동은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준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 행렬이 서울 거리를 지나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격문을 거리에 뿌리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일본 경찰은 시위를 강하게 진압했고 200명 이상의 학생과 시민들이 체포됐습니다. 이로 인해 6·10만세운동은 3·1운동처럼 전국으로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줬고 이후 학생운동이 성장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행동은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생생히 전해집니다. 학생들의 재판을 보도한 1926년 11월 3일자 기사에는 학생들이 태극기를 만들고 격문을 인쇄해 여러 학교에 나눠 줬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학생 이선호는 “자유를 부르짖으면 반드시 자유가 온다는 굳은 신념 아래 행동하였다”고 밝히며 당당한 태도를 보여 줬습니다.

다음 날인 1926년 11월 4일자에는 ‘거사가 양심이니 진술도 양심대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차가운 감옥 안에서도 학생들은 자신의 신념을 숨기지 않고 거짓 진술을 거부했습니다. 두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 모습은 독립을 향한 학생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 줍니다.

● 100년 전 학생들이 오늘날 전하는 메시지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인천, 평양, 원산 등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고, 약 2만 명의 학생이 동맹 휴학으로 뜻을 함께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은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세력으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6·10만세운동이 역사에서 특별히 기억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평소 날카롭게 대립하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독립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손을 잡았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과 시민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이념의 차이를 넘어선 연대, 그것이 6·10만세운동을 역사에 새긴 힘이었습니다. 100년 전 거리로 나섰던 학생들은 지금의 중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청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라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생각의 차이를 넘어 손을 맞잡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세대, 지역, 이념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멀어지거나 갈등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6·10만세운동의 역사는 중요한 교훈을 전합니다. 생각이 달라도 더 나은 세상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면 우리는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순종 서거 100주년을 맞는 2026년의 우리 또한 100년 전 학생들처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갈등을 넘어 소통하고 화합하는 사람이야말로 미래의 역사가 기억할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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