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구리복이 가져온 부와 죽음의 그림자[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37〉

  • 동아일보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먹고살기 위해 쓴 헬멧의 이면에는 생존을 위한 사투가 있었다. 옛날 잠수부 ‘머구리’는 호스를 통해 헬멧으로 산소를 계속 공급받아 오래 물속에 머무를 수 있었으나, 호스가 꼬이거나 꺾여 산소가 차단되면서 숨지는 일이 잦았다. 더 무서운 건 잠수병이다. 수압이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수압이 낮은 수면으로 급하게 올라올 때 혈관 내 기포가 발생한다. 잠수 중 체내에 용해돼 있던 질소가 방울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이를 잠수병이라 하며 두통, 관절통, 난청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신체가 마비되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잠수부들은 잠수병을 ‘시베리가 온다’ 혹은 ‘시베리 맞았다’고 표현한다.

강원 삼척시 갈남마을의 1960, 70년대는 머구리의 전성기였다. 16명이 활동했고 배도 6척이나 운용했다. 김익수는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에 머구리 일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미역, 전복, 문어가 흔했다. 문어를 100kg 넘게 잡은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수병이 찾아왔다. 몸에서 열이 나고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절벽에 섰지만, 끝내 두려워 뛰어내리지 못한 기억이 생생하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으나 잠수병은 고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돈을 많이 벌었어도 결국 병원비로 다 썼다.

김동준은 스물세 살 때 잠수병에 걸렸다. 다섯 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지만 하반신이 마비됐다. 생계가 막막해 계속 머구리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속에서는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광정은 형 김동준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얕은 수심에서 잠수부 일을 시작했다. 그래도 치료비가 부족해 아내의 반지까지 팔았다. 잠수부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시작한 탓에 산소 조절 방법을 몰라 수면 위로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 수도 없이 넘어지며 기술을 익혔다. 그도 결국 잠수병에 걸려 걷기조차 힘들어졌다. 육지에서와 달리 물속에선 몸이 가벼워 자유로웠다. 그래서 마을의 마지막 잠수부로 일을 놓지 않았다.

이주옥은 머구리 일을 시작한 초창기, 수압 때문에 코피가 일상적으로 터졌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집을 사고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도 도울 수 있었다. 잠수병이 왔을 때는 몸만 낫게 해 준다면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육지 일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추석이 다가오는데 가진 돈이 없었다. 두려움을 떨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삼웅은 머구리 일을 하면서 호스가 세 번이나 끊어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스크루에 호스가 걸려 산소 공급이 중단돼 기절한 채 끌려 올라온 일도 있었다. 동생이 일을 그만두게 하려고 잠수복을 버렸지만, 그는 생계를 위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2013년 갈남마을에 상주하며 조사할 때 인터뷰한 머구리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9월 갈남마을을 다시 찾았다. 당시 이야기했던 머구리 중 네 명은 잠수병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은 몇 달 전부터 잠수병이 깊어져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 부자가 되기를 꿈꿨으나 그들을 기다린 건 ‘시베리’였다.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바다는 황금밭이었지만, 결국 칠성판을 짊어지고 하는 일이었다.

#머구리#잠수병#갈남마을#수압#산소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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