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도 그리워했던 소소한 일상[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7일 23시 00분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새벽 4시 반 창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부르릉’ 신문을 배달하는 소리다. 이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깼다가 다시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한 시간 후 일어나 현관에 놓인 신문을 가지러 나간다. 눈이나 비 오는 날에는 비닐에 싸인 빳빳한 신문이 배달된다. 어느 누가 나를 이렇듯 착실하게 배려해줄까? 신문을 받아들 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매주 일요일 밤 대문 앞에 내놓으면 새벽이 오기 전에 말끔히 치워진다. 신문을 배달하는 분도, 쓰레기를 치우는 분도 지금까지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이른 아침 학교에 도착하면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가 물리학과 연구실들을 치우고 계신다. 세상은 이처럼 조용히 자기 일을 하는 분들에 의해 평화롭게 유지된다.

과학자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우주비행사 수니 윌리엄스와 부치 윌모어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8일간 머물 예정이었다가 기체 결함으로 286일 만에야 돌아왔다. 이 기간에 지구를 4576번 돌았다고 한다. 귀환을 기다리는 동안 윌모어는 허리케인 베릴이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자기 집을 휩쓸고 가는 것을 우주정거장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텐데, 어떤 느낌이었을까?

우주 환경에서의 생활은 지구와 같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은 중력에 있다. 중력이 사라진 우주정거장에서 무중력 상태로 6개월 이상 체류할 경우 근육량이 30%까지 줄어든다. 뼈의 밀도 역시 10%까지 줄어든다. 근육과 뼈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걷고 달려야 하지만, 우주정거장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특수장치를 이용해 하루에 2시간 30분씩 운동하더라도 근육 손실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수직의 중력을 느끼며 24시간 넓은 공간에서 살아온 인간의 몸이기에, 좁은 공간에 갇힌 채 무중력 상태로 지내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구에 돌아오면 다시 중력 변화로 인해 약화된 근육과 뼈뿐만이 아니라 신경계, 면역력, 혈액순환, 시력, 뇌 기능, 신진대사 기능, 피부, 심리 등에서도 변화가 일어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수십 일간 재활 치료가 진행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늘어난 척추로 인해 허리 디스크를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생기는 신체 변화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다.

우주비행사는 보통 6개월을 우주에서 보낸다. 따라서 9개월이라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귀환이 연기됐으니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비행기가 몇 시간 연착돼도 기다리기 힘든데, 하물며 9개월 넘도록 지구를 돌며 기다려야 했다니. 우주비행사들은 인터뷰에서 “직접 깎은 잔디의 냄새를 맡고 싶고,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싶고,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했다. 대단하고 거창한 것을 바랄 줄 알았는데 그들이 그리워한 건 지구에서 누린 소소한 일상이었다.

일상을 잃었던 두 우주비행사의 과학적 노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각박한 우리 현실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당장 직접적인 도움으로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언제 현재만을 생각했던가. 과학자의 일상은 조용하고 묵묵한 일로 채워지지만, 시선은 늘 미래를 향해 열려 있지 않던가.

#우주비행사#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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