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탄핵, 비장하지 말고 자유롭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6일 23시 21분


윤석열이 자행하고 이제 스스로 당하는
부친 살해는 비극 아닌 막장극일 뿐
비장해져서 심각한 의미 부여하기보다는
헌재가 자유롭게 결정할 분위기 만들어야

송평인 칼럼니스트
송평인 칼럼니스트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원시 사회에서 널리 퍼진 토템과 터부의 기원이 부친 살해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을 독점하는 부친에게 자식들이 대항해 부친을 살해하고 여성들을 나눠 가지려 했다는 것이다.

실은 이어지는 주장이 더 중요하다. 부친을 살해하고 난 뒤 자식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살해된 부친의 대용물로 한 동물을 토템으로 삼고 토템을 죽이는 것과 부친의 여성들(어머니와 자매들)과의 근친상간을 금지함으로써 그로부터 도덕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부친 살해는 섬뜩한 표현과는 달리 정치적으로는 자식들 간의 형제애(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나라도 부친 살해를 통해 정치 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는 이승만을 ‘살해’하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박정희를 ‘살해’했다. 다만 그것이 제자리에 머물면서 반복되는 부친 살해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양(止揚)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 계기가 죄책감이다. 이승만이 공산 체제에 맞서 자유 체제를 확립해 놓지 않았으면 박정희의 산업화는 성공할 수 없었고, 박정희가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김영삼과 김대중의 민주화도 불가능했다는 인식이 바로 그런 것이다.

프로이트는 개체(個體) 발생은 계통(系統) 발생을 반복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인류가 원시 사회에서 겪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개인은 유아기에 겪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콤플렉스가 극복되지 못하고 신경증이 되기도 한다.

과거 유승민과 남경필, 김세연 같은 이른바 쇄신파에게는 신경증이 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모두 보수 진영의 정치인이었다. 아버지의 좋은 행태만이 아니라 나쁜 행태까지도 가까이서 보고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은 마음에서, 정작 자신은 아버지의 후광이 없었다면 국회의원이 되지도 못했을 텐데도 오히려 그 후광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자학(自虐)-피학(被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 도착이 그들이 궁극적으로 실패한 이유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부친 살해 없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부친 살해 이후에 꼭 필요한, 자식들 간의 형제애에 기반한 연대를 이루지 못했다. 3김 시대 이후 시대착오적이 된 1987년 체제가 그런 연대를 방해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원집정부제로든 내각제로든 개헌을 모색했어야 한다. 그때 그것을 하지 못해 나라도 보수 정당도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이후 윤석열은 박근혜를 ‘살해’하고 이명박을 ‘부관참시’했다. 그리고 이제 윤석열이 그의 브루투스인 한동훈이 가담해 현실화한 부친 살해의 대상이 돼 있다.

보수가 윤석열 탄핵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윤석열이 자행한 부친 살해와 그가 지금 당하고 있는 부친 살해는 오이디푸스가 등장하는 그리스 비극의 비장한 부친 살해와는 달리 순정하지 않는 플롯, 다시 말해 문재인의 적폐청산이나 민주당의 줄탄핵 같은 플롯이 끼어든 막장극의 부친 살해일 뿐이다. 그래서 윤석열 탄핵에서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한다는 식으로 비장해질 필요가 없다.

몇몇 ‘보수 중의 보수’라는 사람들이 누가 더 크게 외치는가 시합하듯 ‘8 대 0 탄핵’을 외치고 있다. 헌재 결정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런 단언은 그저 압박일 뿐이다. 압박은 이미 충분한데 굳이 가세할 필요까지야…. 심지어 어떤 이는 탄핵이 안 되더라도 폭동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할 때에 성난 예언자라도 된 듯 탄핵이 안 되면 폭동이 일어난다고 위협한다. 지레 겁먹고 화내는 건 신경증(독일어 원어는 노이로제·Neurose)의 전형적인 증상이며 신경증은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탄핵 반대의 소리가 커지는 걸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 트럼프의 사례가 보여주듯 탄핵은 순전히 법적인 판단으로만 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 때는 헌법재판관이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헌재 밖의 분위기가 찬반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해야 헌법재판관도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의 결정이라면 탄핵이든 기각(기각이라고 해봐야 결국 약속한 조기 하야)이든 수용해야 하고 그런 결정을 거부하는 폭동은 어느 쪽에서 나오든 단호히 제압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과거에 비장한 부친 살해를 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전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윤석열#탄핵#부친 살해#콤플렉스#헌법재판소#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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