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김철중]훙바오 줄이고, 연휴 근무 자처… 中 최대 명절 춘제 바꾼 경기침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4일 23시 09분


‘겉과 속’ 모습 달랐던 2025년 中 ‘춘제’
‘춘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당국 “세계가 ‘중국 설’ 인정” 자찬… 홍등과 조명 장식으로 명절 분위기
보조금-쿠폰 소비 진작해도… 경제 지표는 반등 기미 안 보여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 류리창(琉璃廠) 거리는 춘제를 즐기러 나온 인파로 붐볐다. 이곳에선 춘제 기간 동안 임시 시장 형태의 ‘묘회(廟會)’가 열린다. 또 거리 곳곳에는 화려한 홍등 장식이 설치돼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세계가 인정한 중국의 춘제(春節·중국 설)를 마음껏 즐기세요.”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 시청구의 골동품 상점가 류리창(琉璃廠) 거리. 한국의 설에 해당하는 최대 명절 ‘춘제’ 당일을 맞은 터라 인파가 가득했다. 곳곳에는 화려한 홍등도 걸려 있어 명절 분위기가 물씬 났다. 춘제 기간 이곳에서는 임시 시장 형태의 ‘묘회(廟會)’가 열린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전통 공연을 접할 수 있어 베이징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빨간 종이 위에 붓글씨로 ‘복(福)’자를 쓰는 체험을 한 프랑스 여성은 “거리 곳곳마다 빨간색 장식이 있어서 마치 크리스마스 같다”고 했다.》

● ‘음력 설’ 아닌 ‘중국 설’ 강조

이번 춘제 기간에는 중국 전역에 홍등 등 빨간색으로 치장된 조형물이 대거 설치됐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베이징에서만 약 26만 개의 홍등과 장식, 2969개의 조명 시설이 매일 밤 불을 켰다. 지난달 29∼31일에는 춘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불꽃놀이도 전국 곳곳에서 개최됐다.

춘제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은 중국 관영 매체가 단골로 보도하는 소식이다. 올해는 특히 그 강도가 한층 강화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유네스코에서 춘제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한 춘제의 정식 영어 명칭은 ‘스프링 페스티벌(Spring Festival)’. 그러나 중국에서는 ‘중국 설(Chinese New Year)’이란 표현을 쓴다. 한국 베트남 등 동양 문화권의 다른 나라에서 쓰는 ‘음력설(Lunar New Year)’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이는 동양권 전반에서 음력설을 쇠는 관습의 기원이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는 평가다. 관영 매체들은 춘제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 또한 ‘세계가 설 풍습의 중국 기원설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설날이 ‘세계의 설날’이라는 건 생생한 현실”이라며 “20여 개국이 춘제를 공휴일로 지정했고, 전통 활동으로 춘제를 기념하는 국가가 약 200개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 당국, 소비 진작 총력


당국이 춘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 진작이다. 중국은 수년째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당국이 지난해 내내 여러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경제지표에서는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0.1%로 같은 해 11월(0.2%)보다 더 낮아졌다.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이 자체 집계한 올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1로, 한 달 전 50.5보다 하락했다. 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를 뜻하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은 물론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등에 전방위 관세 부과 의지를 밝히면서 그간 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올해 주요 과제로 ‘내수 진작’을 꼽은 중국 정부로선 춘제 연휴가 소비 살리기의 첫 시험대나 다름없는 셈이다.

당국은 춘제를 20여 일 앞둔 지난달 8일 ‘이구환신’(以舊換新·가전제품 자동차 등을 바꿀 때 보조금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스마트폰, 태블릿PC를 포함한 6000위안(약 120만 원) 이하의 전자제품을 살 때 최고 500위안(약 10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것이다. 지원금 제공 대상에 식기세척기·전기밥솥·전자레인지·정수기 등 4개 품목도 추가했다.

당국은 지난해 12월부터 6억 위안(약 1200억 원)의 영화 티켓 구매 보조금도 지급했다. 그 결과, 3일 국가영화국에 따르면 춘제 기간 동안 영화 입장권 수익이 80억 위안(약 1조6000억 원)을 넘어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여행도 소비를 늘리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관영 매체들은 춘제 연휴 여행지로 각광받는 주요 지방도시를 방문하라며 적극 홍보했다.

● 명절 풍속도 변화


다만 여전히 중국에선 소비 심리가 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관영 매체의 보도와 달리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을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고, 지급받은 쿠폰으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 감상이 늘어난 정도에 그쳤다는 의미다. 로이터통신은 “소비 지출을 늘리려는 공무원들의 노력에도 중국 젊은이들은 돈을 아끼고 더 많이 저축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2일 보도했다.

길거리 상점에서 손오공 분장을 한 상인이 토끼 모양의 솜사탕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길거리 상점에서 손오공 분장을 한 상인이 토끼 모양의 솜사탕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실제 춘제 축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당국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류리창 거리에도 인파는 많았지만 정작 일대의 골동품 상점과 식당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번화가에 나왔지만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의식한 듯 정작 돈을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던 것.

경기 호황기에 많은 중국인들은 춘제를 홍콩에서 즐겼다. 그러나 올해 춘제 기간 홍콩을 찾은 본토 관광객의 체류 기간, 1박당 평균 지출액 등이 모두 감소했다고 홍콩 사우스모닝차이나포스트(SCMP)가 전했다.

춘제 기간 중 반드시 고향을 방문하고 일가친척에게 넉넉한 ‘훙바오(세뱃돈)’를 준다는 분위기도 옅어졌다. 광시자치구의 바이서 당국은 이번 연휴 기간 ‘세뱃돈이 20위안(약 4000원)을 넘지 않게 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취업난과 임금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젊은이들이 “친척이나 조카에게 줄 세뱃돈조차 부담스럽다”고 강조하자 내놓은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바이서 일대의 주요 은행은 이번 연휴에 20위안 신권을 교환해 주는 특별 창구도 열었다.

“다른 명절은 몰라도 춘제 때는 고향에 가야 한다”고 여기는 중국인도 적어지고 있다. 과거 춘제에는 대도시에서 배달원이나 공유차량(택시) 기사를 하는 ‘농민공(도시에서 일하는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고향을 찾아 연휴 동안 배달을 시키는 일도, 택시를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춘제 연휴 중에는 평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게 현지인들의 반응이다. 한 배달원은 “연휴 때는 기차표가 비싸고, 또 연휴 때 일하면 배달료를 추가로 받을 수 있어서 연휴 일주일 전에 고향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일부 식품 배달 플랫폼 기업은 도시에 남은 배달원들을 위해 명절 파티 등도 개최했다.

춘제 귀성 행렬이 빨라지고 주요 상점들의 휴업 기간 또한 대폭 짧아졌다. 또 다른 경제 매체 디이차이징(第一財經)에 따르면 예년에는 춘제 연휴 마지막 이틀에 귀성 인파가 몰렸는데, 올해는 경제난 속에 서둘러 도시로 돌아가는 농민공들이 많아지면서 연휴가 끝나기 4일 전부터 고속도로와 국도가 막했다. 과거에는 춘제 기간 최대 2주 정도 문을 닫던 상점과 식당도 많았지만 올해는 연휴 시작 며칠 만에 영업을 재개하는 곳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훙바오#연휴#중국#명절#춘제#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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