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崔 “받았다”는데 尹 “준 적 없다”는 ‘계엄 쪽지’… 누가 뭘 숨기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2일 23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2025.01.21. 사진공동취재단
12·3 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받았다는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쪽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헌법재판소에 처음 출석한 자리에서 “쪽지를 (최 부총리에게) 준 적도 없고, 나중에 계엄 해제 후 한참 있다가 언론 기사에서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이미 국회에서 “대통령이 제 이름을 부르면서 ‘참고자료, 이것 참고하라’고 하니까 옆의 누군가가 자료를 하나 줬다. 예비비 관련 내용이었다”며 쪽지 수령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최근 언론이 공개한 이른바 ‘최상목 쪽지’에는 “정부 예비비를 확보하고, 국회 예산을 완전 차단하고, 국가비상 입법기구 예산을 편성하라”는 3가지 지시사항이 담겨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 내용과 일치한다. 최 부총리는 A4용지 1장 분량의 인쇄물인 이 ‘쪽지’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 문건이 중요한 이유는 계엄 세력이 국회를 무력화하고 대체 입법기구를 만들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의 핵심 증거이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더불어 국회 예산 차단, 국가비상 입법기구 예산 편성 지침까지 내렸다면 이는 “야당에 대한 경고성 계엄”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회를 멈춰 세우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법 구속영장 심사 때 판사가 유일하게 던진 질문도 이 쪽지 내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당시 영장 심사 때 “(쪽지를) 김용현 장관이 썼는지, 내가 썼는지 가물가물하다”고 했고, 헌재에선 아예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 전 장관은 변호인을 통해 “내가 썼다”면서도 “긴급명령 및 긴급재정입법권 행사를 건의한 것으로, 대통령이 (최 부총리에게) 준비하고 검토하라고 준 것”이라고 했다. 국회 무력화를 통한 국헌 문란 지적엔 선을 그으면서도 대통령 지시 사실은 인정한 것이다.

만에 하나 계엄이 성사됐다면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국회를 해산한 뒤 만든 임시 입법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의’ 같은 초헌법적 기구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김 전 장관, 최 부총리의 말이 엇갈리고 있다. 더욱이 최 부총리는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대통령과 권한대행 간의 문제라는 점에서도 명확한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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