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남극 경쟁 잇는 우주 경쟁
이스라엘 “우주에서 미사일 요격”… 일정 고도 넘으면 영공 침해 아냐
‘어디서부터 우주인가’ 정답 없어… 머스크 “우주 식민지 건설” 주장도
천체 소유권 외치면 우주조약 위반… ‘공유지’ 남극엔 과학기지만 허용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용 ‘애로’가 시험 발사되는 모습. 미 해군 제공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2023년 10월 3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전쟁 중이던 이스라엘군은 예멘 후티가 쏜 지대지미사일을 방어시스템 ‘애로-2’로 요격했다. 애로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1986년부터 공동으로 개발한 탄도탄요격미사일이다. 전쟁이 일상인 이스라엘군에 미사일 요격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날의 요격이 알려진 건 그게 이뤄진 위치 때문이었다. 핵 처리 시설이 있는 네게브 사막 상공이라는 요격 지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도가 문제였다. 이스라엘군은 요격이 지구 대기권 밖에서 행해졌다고 주장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인류 최초의 우주 전투라고 볼 만했다.》
사실 애로가 특별한 요격미사일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미사일도 대기권 밖에서 요격이 가능하다. 가령 2014년 최초 시험 발사에 성공한 인도의 요격미사일 PDV는 150km보다 높은 고도에서 적의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다. 또 튀르키예가 구입한 러시아의 S-400은 최대 요격 고도가 185km이고, 미국이 일본과 함께 개발한 SM-3는 1000km에 달한다.
인류 최초의 우주 전투를 수행했다는 이스라엘군 주장의 진위는 어디까지 지구고, 어디서부터 우주가 시작되느냐의 질문에 달려 있다. 의외로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여러 의견만 존재할 뿐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지구 대기. 주황색과 녹색의 층이 국제항공연맹(FAI)이 주장하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 ‘카르만선’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먼저 국제항공연맹(FAI)이 주장하는 카르만선이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로켓 연구 조직인 제트추진연구소를 창립한 시어도어 폰 카르만의 이름을 딴 카르만선은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고도 100km에 해당하는 곡면이다. 카르만선보다 고도가 낮거나 같으면 지구의 일부, 그보다 높으면 지구를 벗어난 우주라는 얘기다.
그 다음으로 과학계는 대기권을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의 유무로 판별한다. 대기권은 고도가 높아지면서 온도가 낮아지는 대류권, 이어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오히려 온도가 높아지는 성층권, 다시 온도가 낮아지는 중간권, 그리고 또다시 온도가 높아지는 열권으로 구성되며, 전체 고도는 약 1000km다. 국제우주정거장을 비롯해 지구 저궤도 위성들은 고도 약 80km에서 시작되는 열권에 위치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미군은 우주인을 ‘고도 약 80km보다 높이 비행하는 자’로 정의한다. 미군에게 우주가 시작되는 고도는 약 80km인 셈이다. 나사는 과거에는 카르만선을 따랐지만 2005년부턴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미군이 나사의 기준을 따르는 대신 나사가 미군의 기준을 따른다는 게 중요하다.
좀 더 전투적인 기준도 있다. 미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존 쿠퍼는 1952년 미사일로 방어할 수 없는 상공이 바로 우주라는 기준을 내놓았다. 이는 과거 해양법에서 당시 해안포의 사거리가 3마일(약 4.8km) 정도라는 점에 착안해 영해를 ‘3마일 이내’로 삼은 걸 본뜬 결과다.
어느 높이에서 우주가 시작되는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기’까지만 국가의 영공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가령 북한의 인공위성이 한국의 육해공군 본부가 모두 모여 있는 충남 계룡시 상공을 통과해도 그 고도가 ‘우주’에 해당되면 영공 침해가 아니다. 미군의 우주 고도 기준이 과학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건 소련 상공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역사에 기인한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다.
우주를 또 다른 대항해시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화성에 인류의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창업자의 주장은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의 마데이라 제도를 발견해 식민지로 만든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의 행동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1967년 미국 영국 소련 등이 어떤 국가도 우주 공간에 주권을 가질 수 없고 개발 이익을 독점할 수 없다는 조항을 담은 우주 조약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화성이나 달, 혹은 희귀한 광물이 풍부한 소행성이 특정 국가의 영토나 개인의 사유재산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1967년 효력이 발효되고 현재 112개국이 비준한 ‘달과 다른 천체를 포함한 외계의 탐사와 사용에 관한 국가의 행위를 지배하는 원칙에 관한 조약’(우주 조약)을 살펴봐야 한다.
우주 조약은 “외계는 사용, 점유, 혹은 그 밖의 수단으로 국가가 주권을 주장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한다. 쉽게 말해 우주의 영토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국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같은 회사나 개인의 경우에는 어떨까? 회사나 개인에 ‘국적’이 있는 한 결과는 같다. 천체의 일부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우주 조약 위반이다.
‘그깟 조약 위반이 대수냐?’ 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 듯싶다. 그들 눈에 우주는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인 공유지로 보일 수 있다.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터다. 사유재산이 되지 않는 한 공유 자원은 그저 마구 고갈될 따름이라는 거다.
다만 잘 알려진 공유지의 비극과는 달리, 정반대로 국가나 시장의 개입 없이 공유지가 효율적으로 사용 및 유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 가르쳐지지 않는다. 미 인디애나대 엘리너 오스트롬이 평생 동안 연구한 결론이다. 심지어 오스트롬은 이걸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다.
우주에 비견할 만한 공유지의 사례가 있을까? 물론 있다. 바로 남극 대륙이다. 원주민이라고 해봐야 펭귄이 전부인 그 땅은 모두가 탐낼 법하다. 넓이가 호주의 두 배에 유럽보다도 40% 더 넓은 남극 대륙은 각종 광물이 풍부하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아르헨티나, 호주, 영국, 칠레, 프랑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7개국이 남극 대륙 영토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했다. 나치 독일이 남극 일부를 점령한 적도 있다.
아르헨티나, 영국, 칠레가 각자 주장하는 영토는 서로 겹치기까지 했다. 1952년에는 사고로 불타버린 자국 기지를 다시 지으려 접근하던 영국 배를 아르헨티나가 사격한 전례도 있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고 아르헨티나는 영국에 사과했다.
그럼에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 7개국에 미국, 소련, 벨기에,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까지 더해 총 12개국이 1959년 이른바 ‘남극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남극 조약은 기존에 이뤄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것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영토 주장도 허용하지 않는다. 군사기지의 건설, 핵폐기물의 유기, 핵무기의 폭발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허용되는 걸까? 바로 과학기지다. 과학기지는 앞선 7개국의 영토 주장과 상관없이 아무 곳에나 세울 수 있다. 즉, 남극 조약의 명시적 목표는 과학과 평화의 증진이다. 엉성한 듯한 남극 조약이 1961년 발효된 이래로 지난 60여 년간 남극 대륙은 완벽히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해 왔다.
남극 대륙에서 국가 간의 대결이 아예 없지는 않다.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해 과학기지를 더 많이 짓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1953년에 지은 자국의 에스페란사 기지를 1970년대에 일반인이 와서 머물 수 있도록 개조했다. 1978년 이 기지에선 남극 대륙 최초로 사람이 태어났다.
칠레는 아르헨티나의 책략을 경계했다. 1984년 칠레는 체육관, 방송국, 학교, 교회, 우체국, 심지어 기념품 상점까지 갖춘 기지인 비야 라스 에스트레야스를 지었다. 칠레 국적의 파블로 카마초는 거기서 잉태되고 태어났다. 영국과 칠레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토가 겹치지만, 영국이 아직까지 반격에 나서진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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