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뇌질환… 치매환자 22%에 뇌전증, 자폐 10%도 뇌전증[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8일 14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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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로 불렸던 뇌전증 발작, 왜
뇌회로가 이상신호 만들어내 발작… 뇌 기능 마비시키는 게 뇌전증
자폐-치매 인한 손상이 유발 가능… 뇌전증發 손상이 다른 질환 유발도
뇌파 확인해 약물-수술-자극 치료


《나의 뇌 연구의 시작점은 뇌 회로를 분석하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었다. 뇌 회로 분석 기술을 처음 만들고 나서 제일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뇌 회로가 신호를 처리하는 방법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뇌 회로를 테스트해보는 아주 기본적인 실험을 몇 가지 계획했다. 그런데 실험 결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호가 측정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의아했던 나는 주변에 의견을 구한 결과 그것이 바로 ‘뇌전증’ 신호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나는 그때까지 뇌전증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우연한 기회에 뇌전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신호의 성질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한 뇌 회로가 여러가지로 뇌전증에 취약한 면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뇌 회로가 뇌전증을 일으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뇌전증 연구에 자연스럽게 뛰어들게 되었다.

뇌전증은 예상하기 어려운 때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증상이 있는 뇌 질환이고, 의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많은 편견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그 편견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름도 ‘간질’에서 ‘뇌전증’으로 바꾸었다. 한국에서는 순수 우리말로 ‘지랄병’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영어로 뇌전증은 ‘epilepsy’라고 하는데 그 단어의 그리스 어원은 ‘epilambanein’으로 “to be seized(악령이 깃들다)”라는 뜻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뇌의 성질을 탐구하다가, 뇌가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이러한 ‘발작’, 즉 ‘오동작’을 일으킨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이러한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달리 뇌전증은 다양한 이유로 뇌가 손상을 입었을 때 쉽게 발생한다. 타고난 유전적인 요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는 후천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뇌종양으로 인해 뇌가 손상을 입어 생기는 경우도 있고, 교통사고로 뇌가 다쳐서 일어날 수도 있다. 뇌전증은 뇌가 손상을 입어서 특정 요건이 만족될 때, 뇌 회로가 갑자기 뇌의 정상적인 기능과 맞지 않는 큰 신호들을 만들어내서 뇌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미묘한 조건들이 뇌 속에서 충족될 때 이런 발작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강한 조명이 빠르게 켜졌다 꺼졌다 하는 무대에서, 시각적 자극으로 인해 갑자기 뇌전증을 일으켜 쓰러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처럼 뇌가 어떠한 이유로든 손상을 입거나 뇌전증에 취약한 조건인 상태에서 뇌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강한 빛과 같은 자극을 받았을 때 발작이 일어나게 되고, 이런 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질환을 뇌전증이라고 한다.

뇌전증은 다른 뇌 질환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뇌 질환은 각각 다른 뇌의 부위가 손상을 입어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뇌 질환으로 인한 손상이 뇌전증을 일으킬 수도 있고, 뇌전증 발작으로 인한 손상이 다른 뇌 질환이 생겨나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뇌전증과 치매의 관계에 대해서는 최근 많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연구에서는 24시간 뇌파 검사를 실시한 결과, 뇌전증 관련 신호가 뇌전증이 있는 치매 환자 중 53%에서 발견되었고, 뇌전증이 없다고 알고 있던 치매 환자 중 22%, 건강한 것으로 알았던 노인 중 4.7%에서 발견되었다. 또 다른 24시간 뇌파 검사를 실시한 연구 결과에서는, 뇌전증 발작이 전혀 보고된 적이 없는 치매 환자 중 54%, 그리고 정상 노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 중 25%에서 뇌전증 관련 뇌파 신호가 검출되었다. 치매 환자가 뇌전증 약을 복용하고 인지 기능이 향상되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다.

자폐증도 뇌전증과 매우 관계가 깊다. 자폐증 환자 중 뇌전증이 있는 환자의 비율은 연구 마다 차이가 있지만 30% 정도로 추정되고, 전체 인구 중 뇌전증 환자의 비율인 1~2% 보다 상당히 높다. 6000명의 자폐증 아이들 중 12.5%가 뇌전증이 있다는 조사가 있었고, 13살 이상의 자폐증 환자 가운데는 26%였다. 7000명의 자폐증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10% 정도의 아이들이 뇌전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전증은 발작이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특히, 치매나 자폐증 같은 다른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경우, 다른 질환 증상들로 인해 뇌전증이 있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뇌파로 확인하면, 뇌전증이 없는 줄 알았는데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뇌전증의 3분의 2 정도는 약물, 수술, 뇌자극 치료 방법으로 발작을 막는 관리가 가능하다. 뇌파검사로 뇌전증이 확인되면,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더 이상의 뇌 손상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사회의 뇌전증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편견은 환자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뇌전증 정복을 더욱 어렵게 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편견을 없애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전증은 뇌에 쉽게 발생되는 오동작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뇌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 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뇌전증의 관리와 정복은 다른 많은 뇌 질환을 정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매나 자폐증과 같은 불치병을 현재의 기술로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치매#자폐#뇌전증#뇌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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