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건희]中에 기술 유출한 교수에 탄원서 써준 동료 120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0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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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사회부 차장
조건희 사회부 차장
“중국이 돈 주면서 연구를 시킨다는 건 그 교수님이 매우 유능하다는 뜻이에요. 우리 정부가 제대로 케어(관리)도 안 해주면서 (중국의 지원을) 가로막는 건 좀 아닌 거죠.”

10일 KAIST의 한 교수는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千人計劃)’에 참여해 자율주행차 기술 등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KAIST 이모 교수를 위해 법원에 무죄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동료 120여 명 중 한 명이었다. 이 교수 사건 이후 대학 내에서 어떤 자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지, 탄원서를 철회할 의사가 있는지 묻기 위해 그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이 교수는 본보기로 부당하게 당했을 뿐”이라며 “자정 작업 같은 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가 전 세계 이공계 인재 1000여 명을 영입한다며 2008년부터 추진한 프로젝트다. 선진국은 일찌감치 천인계획의 실상이 다른 나라의 연구 성과를 빼돌리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미국은 2019년 정부 지원을 받는 학자가 천인계획에 참가하는 걸 금지했고, 일본도 2021년 해외 연구 지원 신고를 의무화했다.

국내 학자도 천인계획에서 예외가 아니었음이 2020년 이 교수에 대한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동아일보가 입수해 보도(4월 30일자 A6면)한 이 교수의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 교수는 자율주행차의 눈에 해당하는 라이다(LiDAR) 센서를 포함한 핵심 기술 3개 분야에서 최소 9개의 특허와 3개의 논문을 작성해 이를 중국 측에 넘기는 대가로 총 2380만 위안(약 40억4600만 원)을 약속받았다.

이 교수는 KAIST 석·박사 과정 연구진이 작성한 연구 자료를 클라우드 서버에 올리게 해 중국 측이 실시간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는데, 이 중엔 차량 간 라이다 간섭을 해결할 수 있는 미공개 신기술도 있었다. KAIST가 2018년 12월경 기술 유출 제보를 받아 이 교수를 감사했을 때 그는 중국 측과 짜고 ‘연구 성과는 KAIST와 중국이 절반씩 나눈다’는 허위 서류를 꾸미기도 했다.

이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자기 행동이 학문의 자유와 연구의 자율성으로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놀라운 건 동료 교수 120여 명이 이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며 그의 무죄 방면을 위해 탄원서를 써줬다는 점이다. 한 교수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교수를 옹호하기까지 했다. 정작 이들 대다수는 이 교수가 유출한 자료를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2심 재판부는 “산업기술 유출까지 학문의 자유로 보호할 순 없다”면서 “이 교수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인맥을 동원해 정당화하기에 급급하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기술 발전, 자국 중심주의, 저출생 고령화. 세계를 움직이는 3개의 큰 물줄기를 유심히 보면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기술 우위라도 미래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마저 흔들릴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폭발적으로 발전하지만, 그 열매를 직접 수확하지 못하는 나라는 철저히 뒤처진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을 겪는 한국은 기술 경쟁에서 밀려나면 회복의 희망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산업기술 유출이 안보의 문제라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이 각국의 견제를 받자 더 은밀한 방식으로 해외 연구진을 포섭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이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학계의 자정 능력이다.

#중국#기술유출#탄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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