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취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259〉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1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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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한바탕 꿈과 같거늘, 왜 제 삶을 수고롭게 하나. / 하여 종일토록 취해, 질펀하게 앞 난간에 기대어 누웠노라. / 술 깨어 뜰 앞을 바라보니, 꽃 사이에서 울고 있는 새 한 마리. / 묻노니 지금이 어느 시절? 봄바람이 꾀꼬리에게 말 건네고 있네. / 만감이 교차하여 탄식이 나오는 터에, 술 있어 또 혼자서 술잔 기울인다. / 호탕하게 노래하며 밝은 달 기다리다, 곡이 다하자 어느새 담담해진 이 마음.

(處世若大夢, 胡為勞其生. 所以終日醉, 禿然臥前楹. 覺來盼庭前, 一鳥花間鳴. 借問此何時, 春風語流鶯. 感之欲歎息, 對酒還自傾. 浩歌待明月, 曲盡已忘情.)


―‘봄날 취했다 일어나 마음을 토로하다(춘일취기언지·春日醉起言志)’ 이백(李白·701∼762)





인생에 대한 달관과 관조의 자세를 견지하려는 도가적 인생관을 담은 노래. 헛된 욕망과 잇속 다툼으로 점철된 세상살이 탓에 일평생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한 시인의 탄식이 도처에 배어 있다. 짧은 벼슬살이를 통해 황제의 측근으로부터 모욕과 배척을 경험한 후 여기저기 떠돌며 음주를 즐기고 티끌세상의 혼돈에서 초연하고자 애썼던 시인. 하지만 황제를 도와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 보겠다는 의지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기에, 시인은 관직에 대한 열망을 토로하며 요로(要路)에 스스로 천거하는 시문들을 보내고 또 보냈다.

현실은 냉혹했고 인생살이는 한바탕 꿈처럼 속절없이 흘렀다. ‘왜 제 삶을 수고롭게 하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반복되는 좌절감에 시인이 겪었을 내면의 모순과 갈등, 하여 그는 계절조차 잊은 채 ‘종일토록 취해, 질펀하게 앞 난간에 기대어 누워 있다.’ 애당초 명리로부터 의연하게 초탈할 수 있었다면 이 주체 못할 갈등에 시달리진 않았으련만. 여하튼, 호탕하게 불러댄 봄날의 취가(醉歌)로 시인의 가슴속 응어리가 어느새 사르르 풀렸다니 다행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봄날#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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