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주의의 민낯 보여준 멜로스의 학살[조대호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1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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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정경을 자랑하는 멜로스섬.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이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름다운 정경을 자랑하는 멜로스섬.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이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강자의 정의는 약자의 정의와 다르다. 약자는 정의가 자신의 권리를 지켜주기를 기대하지만, 강자는 힘의 지배를 정의라고 부른다. 인류 역사상 출현한 수많은 제국이 평화, 질서, 자유, 인권 등의 고상한 가치를 내세우면서 패권주의를 미화했지만, 분칠을 벗겨내면 모든 패권주의의 논리는 하나의 주장으로 압축될 것이다. ‘힘 있는 자의 지배가 정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나이 제국이 주변국을 제압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도 똑같았다. 투키디데스는 그런 패권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멜로스의 학살 사건이다.》






패권주의와 중립주의의 충돌

현대인에게 멜로스섬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밀로의 비너스’이다. 1820년 한 농부가 멜로스섬에서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발견했는데 이 조각상이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면서 ‘밀로의 비너스’로 이름이 굳어졌다. 멜로스가 이 비너스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많은 사람이 섬을 찾는다.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에서 배로 1시간 거리인 데다가 다른 섬들과 달리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도 않는다. 백색의 섬을 둘러싼 에게해의 물결은 검푸르고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항구에는 은빛 물결이 반짝인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늑하다. 하지만 기원전 416년 여름의 멜로스 항구는 달랐다. 섬을 정복하기 위해 아테나이 함대가 집결해 있었다. ‘힘의 지배가 정의’라는 논리를 앞세워.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아테나이의 패권주의와 멜로스의 중립주의의 충돌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멜로스는 아테나이의 가까운 이웃이었지만, 인근의 다른 섬들과 달리 아테나이의 동맹국이 아니었다. 멜로스인들은 스파르타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자 중립주의를 고수했다. 처음에는 아테나이도 묵인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아테나이인들은 조급해졌다. 아테나이는 기원전 416년 여름 최후통첩을 날렸다. 항복하고 조공을 바칠 것인가, 싸우다 죽을 것인가? 멜로스인들은 항복을 거부했다. 그들은 아마도 스파르타의 원군에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생존이 걸린 담판에서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인들의 희망을 읽어낸 듯 이렇게 타이른다.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펠레폰네소스 전쟁사’·천병희 옮김) 멜로스인들도 듣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정의와 신들의 호의를 내세워 항변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귀국의 힘과 아마도 월등한 행운에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는 것을 물론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의에 대항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만큼,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여러분 못지않은 행운을 내려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굶주림에 항복했지만 이어진 학살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멜로스인들의 반론에 아테나이인들은 패권주의의 험한 얼굴을 드러냈다. “신들의 호의를 말하자면, 우리도 여러분 못지않게 거기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의 목표와 행위는 신들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인간 상호 간의 행동 원칙에 대한 신념에 전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오. 우리가 이해하기에, 신에게는 아마도, 인간에게는 확실히,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오.”

신들의 세계에서나 인간의 세계에서나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이것이 역사 속에 등장했던 모든 제국의 지배 논리이자 아테나이 제국의 지배 논리이다. 힘의 지배를 정의로 내세우는 이런 논리에 맞서 신의 정의와 운명의 호의를 내세우는 것은 약자들의 ‘유치한 도덕론’에 불과했다. 그래서 멜로스의 사건은 ‘유치한 도덕론’과 힘을 앞세우는 ‘현실주의’가 충돌할 때 생기는 결과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의에 대한 철학적 논쟁 같은 담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테나이인들은 포위하고 섬을 외부세계와 고립시켰다. 굶주림에 내몰린 멜로스는 그해 겨울 항복했다. 하지만 아테나이인들에게 패자에 대한 관용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남자를 살해하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다. 그러니 승리한 것이 약자들을 위한 정의가 아니라 강자의 정의였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나? 멜로스인들을 도울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파르타의 원군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멜로스 학살의 결과를 그렇게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사건은 그 뒤 다른 사건들 속에서 진면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를 정복함으로써 눈엣가시를 제거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일탈의 조짐을 보이던 다른 동맹국들 앞에서 일벌백계의 징벌 효과도 얻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멜로스의 학살이 자신들에게도 몰락의 시작임을 예상치 못했다.

탐욕이 부른 아테나이의 원정

멜로스섬에서의 승리 후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힌 아테나이인들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멀리 떨어진 시켈리아섬으로의 원정을 감행한다. 하지만 무모한 원정은 참패로 끝났다. 시켈리아 전투를 그린 삽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멜로스섬에서의 승리 후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힌 아테나이인들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멀리 떨어진 시켈리아섬으로의 원정을 감행한다. 하지만 무모한 원정은 참패로 끝났다. 시켈리아 전투를 그린 삽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멜로스에서의 승리는 아주 작은 승리였다. 하지만 이 승리는 지지부진한 전쟁을 치르던 아테나이인들에게 자기 확신의 계기가 되었다.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힌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를 정복한 뒤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모험에 나섰다. 이제는 100km가 아니라 800km 떨어진 남부 이탈리아의 큰 섬, 시켈리아 원정이었다. 겨울이면 전령조차 4개월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탐욕과 정복욕에 사로잡힌 이 무모한 원정은 ‘거대한 사업’이었다. ‘희망’에 들떠 원정에 앞장섰던 ‘다수’ 가운데 어느 누가 2년 뒤 다가올 재앙을 예측했을까? 원정은 참패로 끝났다. 막강 함대는 괴멸되었고 군대는 거의 전멸했으며 아테나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내몰렸다.

멜로스의 승리와 시켈리아 원정의 참패는 아테나이 제국의 지배욕과 탐욕이 시차를 두고 낳은 쌍둥이였다. 무너지는 제국을 바라보며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인들에게 했던 말을 이제 스스로 되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신들을 믿는 사람들은 아테나이의 참패를 신의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인간 본성의 자기 파괴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지배욕이 낳은 ‘히브리스’(오만)의 결과로 판단할 것이다. ‘힘의 지배가 정의’이고 ‘정치는 도덕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판단 또한 ‘유치한 도덕론’일까? 눈먼 희망에 속아 ‘현실’을 모르고 몰락을 자초한 사람들 대다수가 ‘현실주의자들’이라는 것은 인간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현실주의자들’은 도덕도 현실의 일부라는 것을 모른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패권주의#멜로스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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