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이상훈]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을 외면하는 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9일 23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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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선택받는 나라’ 목표로 문호 여는데
韓, 이민청 신설 논의조차 온데간데없어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일본 도쿄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가장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은 편의점이다. 외국인 티가 바로 나는 동남아시아인이 가장 많다. 명찰을 봐야 외국인인 줄 아는 중국인이나 한국인도 제법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전에는 24시간 3교대 근무하는 모든 점원이 외국인인 편의점도 있었다.

대도시 편의점에서 매일 외국인을 접하는 일본과 주로 공업단지나 농촌에 많이 분포하는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 체감 수준이 다르다. 총인구 대비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한국 1.6%(84만 명), 일본 1.4%(182만 명)로 비슷하지만 현실에서 피부에 와닿는 느낌은 차이가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친숙해서일까. 일본의 해외 인력 문호 확대 정책 발걸음은 갈수록 빠르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경단련(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은 일본이 ‘외국인에게 선택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며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경단련은 “5년 이상 일할 수 있게 해야 기업이 임원 등용까지 생각하고 중장기 인재 육성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허드렛일만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작은 제도 하나를 개선하는 데도 신중한 일본이지만 외국인 인력 확대에서는 일본답지 않게 빠르다. 지난 30년간 외국인 인력 확보 정책의 중심이던 ‘기능 실습 제도’는 폐지가 기정사실화됐다. 이 제도는 ‘개발도상국에 기술을 전수하는 국제 공헌’이라는 허울만으로 외국인 인권을 침해하며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신 일본 정부는 올 들어 ‘특정 기능 2호’ 확대를 추진 중이다. 건설업 조선업같이 일손 부족이 심각한 업종을 지정해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는 제도다. 체류 기간 제한이 없고 가족을 데려올 수도 있으며 영주권도 딸 수 있다. 자민당 보수파는 “사실상 이민 허용”이라며 반발하지만 대세는 기울었다.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지 1년이 안 됐는데도 이달 들어 노인 돌봄, 택시·버스 업계 등에서 “우리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한다.

고도 인재 비자도 있다. 정보기술(IT) 종사자나 상위권 대학 출신, 석·박사 학위자에게 가산점을 주면서 비자 취득을 독려한다. 일본 기업이 이 비자를 활용해 한국에서 잘나가는 IT 개발자를 ‘모셔간’ 사례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지난해까지 3만8000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

고도 인재 비자 취득자는 일본에서 웬만한 일본인보다 대우가 좋다. 통장 하나 만드는 데 2주 전부터 예약하고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서 고도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에게는 낮은 금리에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겠다며 은행 영업사원이 사정한다.

국내 산업 현장의 심각한 인력 부족과 저출산 고령화를 고려하면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를 놓고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외국인 근로자 몇 명만 그만둬도 공장이 멈추고 밭에서 작물을 수확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시골에 운전사가 없어 노선버스가 폐지되는 일본 상황이 몇 년 뒤 한국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불법 체류나 건강보험 부당 수급은 막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부 일탈 때문에 외국인 인력 도입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현실을 외면한 한가한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초기 이민청 설립 논의가 시작되고 대통령이 직접 외국 인력 통합 관리 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했지만 외국인 인재 유치를 위한 제대로 된 논의는 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몇 개월 만에 외국인 인력 유입 제도를 새로 가다듬고 확대까지 검토하는 일본과 비교하면 느려도 너무 느리다. ‘외국인에게 선택받는 나라가 되겠다’는 일본에 뒤처진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더 암울해진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외국인#근로자#한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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