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유령 아동’의 끔찍한 살해·유기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여야 정치권은 어제 한목소리로 그런 비극을 막을 제도적 입법을 다짐했다. 의료기관의 출생 사실 통보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와 산모가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국가가 보호하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의 수치다.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했고, 더불어민주당도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태어난 모든 아이가 국가 시스템에 등록돼 최소한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사회를 통해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필요성을 제기했다. 출생통보제 도입 여론이 특히 높아진 것은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숨진 지 7년 뒤에야 그 존재가 알려진 ‘투명인간 하은이’에 대한 동아일보의 2019년 1월 보도 이후였다. 그해 5월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도 출생통보제가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 4년이 지나도록 입법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국회 들어서도 관련 법안은 이미 15건이나 발의돼 계류돼 있다. 정부가 책임을 민간에 떠넘긴다는 의료계 반발과 ‘병원 밖 출산’이 늘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지만 병원의 부담을 줄이고 보호출산제 같은 보완책이 있음에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는 사이 미신고 아동을 학대한 혐의로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만 지난 4년간 22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학대를 당한 뒤에야 존재가 드러난 22명 외에 또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유령 아동의 수는 적지 않을 것이다.
여야는 부랴부랴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약속했다. 내주 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거쳐 곧바로 본회의 처리까지도 할 수 있다며 속도를 내겠다고 한다. 불과 1주일이면 끝낼 수도 있는 법안을 21대 국회 3년간이나 방치했던 셈이다. 이런 직무유기의 책임을 뒤늦은 반성 한두 마디로 모면할 수는 없다. 국회는 참혹한 스토킹 살인사건이 나고서야 관련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을 최근 마무리했다. 국민 삶은 뒷전이고 오직 정쟁에만 골몰하는 이런 국회를 국민은 얼마나 참고 지켜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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