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한미 핵협의그룹에 숨겨진 ‘아시아 核 쿼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7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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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G는 日·濠까지 합류할 ‘4국동맹’의 그릇
‘억제력 강화-中과의 갈등’ 시험대 오른 한국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4·26 한미 정상회담 결과 나온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두고 ‘사실상 핵 공유’라느니 ‘속 빈 강정’이라느니 그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어떤 제도나 기구든 시작은 낯설고 어설프기 마련이다. 첫발을 떼자마자 주저앉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몸집을 불리고 힘도 키우기 마련이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쉽게 소멸하지도 않는다. 냉전과 함께 탄생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탈냉전 이후에도 확장을 거듭하는 것은 그 제도화의 힘이다. NCG도 앞으로 무엇이 담기고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해야 한다.

NCG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연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작년 2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나온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CCGA)의 보고서 ‘핵 확산 방지와 미국 동맹 안전보장’이 그 시작으로 보인다. 여기엔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과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맬컴 리프킨드 전 영국 외교장관이 공동의장을 맡고 여러 나라 안보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호주 일본 한국을 미국의 핵 기획 과정에 참여시키고 이들과 미국 핵전력 정책을 논의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나토의 핵기획그룹(NPG·Nuclear Planning Group)과 같은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의 창설을 제안한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는 별도로 핵 억제에 특화된 ‘아시아판 핵 쿼드’의 설립을 주문한 것이다.

그 제안의 동인은 미국의 정권 교체였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경시와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동맹국들의 의구심을 씻어내지 않으면 여러 나라의 독자 핵무장 등 세계적 핵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나아가 작년 2월엔 한국인의 71%가 자체 핵개발에 찬성한다는 CCGA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미국 방위공약에 대한 한국의 불신이 이슈로 떠올랐다.

또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핵 보유 가능’ 발언은 세계 안보전문가 그룹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 말실수인지, 국내 여론 관리용인지, 미국을 향한 압박용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커져가는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을 관리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중 눈에 띄는 정책구상이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의 ‘신뢰의 위기: 아시아에서 확장억제 강화의 필요성’ 보고서였다. 클링너도 한미일 3국과 호주가 참여하는 나토식 다자 NPG 설립을 제안한다. 다만 “한국은 NPG란 이름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이든 불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라며 한미 전력의 통합성과 한국의 다급한 요청, 국가적 자부심을 감안해 일단 양자 NPG를 만든 뒤 4자 그룹으로 묶는 2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배경 아래 태어난 한미 협의체 NCG는 미국의 전략적 큰 그림에선 한미일 3자, 이어 아시아판 4자 NPG로 가는 첫 징검다리일 것이다. 실제로 NCG가 핵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갖추려면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한미일 3각 협력은 필수적이다. 나아가 북핵 위협이 더욱 커지고 미중 대결이 한층 격화되면 호주의 합류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이 불가피하게 중국과의 갈등을 최전선에서 감당해야 하는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는 데 있다. 중국은 쿼드 같은 안보협력체를 두고 ‘배타적 패거리 짓기’라며 강력 반발해 왔다. 한국은 북핵에 맞선 한반도 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만 미국은 대만해협은 물론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 NCG가 미국엔 아시아판 핵 동맹의 시험대지만, 한국엔 미중 간 선택의 시험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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