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으로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았던 1933년의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하워드 휴스는 초호화 요트를 구입했다. 나라 전체가 경제난으로 시름하고 있던 때인데도 그는 이 소비로 인해 오히려 ‘핫한 멋쟁이’란 이미지를 입고 당대 최고 미녀 배우들의 사랑을 받았다.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역사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 반복적으로 나타남에 주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도 미국 남성들이 선호하는 럭셔리 브랜드 판매량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경기 침체와 같은 경제적 자원의 부족 시기에 실제로 남성들의 럭셔리 제품 구매 의도가 높아지는지, 그리고 이런 제품을 구입하는 남성들에 대해 여성들이 느끼는 매력도가 커지는지 연구했다.
실험 결과 ‘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정보를 들은 남성들은 이러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 집단에 비해 럭셔리 제품에 높은 구매 욕구를 드러냈다. 여성들 역시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정보를 접한 집단에서 럭셔리 제품을 사용하는 남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이유는 ‘자원 부족의 심리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심리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이론이다. 이 이론과 진화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특히 남성들은 불황기에 럭셔리 제품 소비를 통해 경제적 여유를 드러내는 것이 이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자원부족 심리학을 활용해 소비자 키워드를 분석한 김병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에 따르면 경기 침체기에 신체적 매력도를 높이는 뷰티 또는 피트니스 관련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도 명품 소비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해질수록 사람들은 자기 계발을 통한 발전 등의 장기적 성과보다 파트너를 찾는 등의 단기적 성과에 자원을 집중하려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경기는 제품 개발 트렌드나 문화 콘텐츠 분야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자원 부족 상황은 집단에서의 경쟁을 심화시키는데, 이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 큰 크기, 각진 디자인, 빨간색 등 물리적으로 강하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제품을 선호한다. 동물들이 위협을 느끼면 최대한 자신의 몸을 크게 부풀리는 것과 유사한 논리다. 근육을 키우는 ‘벌크 업’ 트렌드가 가속화되는 동시에 ‘힘겨루기’를 하는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 수 있다. 100명의 참가자가 신체적 능력을 겨루는 ‘피지컬: 100’이 한국 예능 중 처음으로 넷플릭스 TV프로그램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것도 그래서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경기 침체기엔 내가 속한 국가, 지역, 고향 등을 편애하는 성향도 강해지기에 ‘애국심 마케팅’ 등도 주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불황에도 강한 히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열망 지도 변화를 읽어야 한다. 과거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이런 시기엔 ‘강한 나’ ‘강한 집단’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박한 상황이 동물적 본능을 이끌어낸 셈이다. 이러한 생존 본능을 다시 한번 일깨워야 우리 기업과 비즈니스를 생존시킬 혁신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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