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없다는 당신에게![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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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해결의 핵심은 문제의 객관화
글로 써보면 원하는 것 뚜렷이 보여
선배 조언 구하기 전 스스로 길 찾아야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젊은 친구들에게 많이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선배가 없다는 말이다. 세상의 그 많은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내가 젊었을 때 했던 푸념을 요즘 세대도 여전히 하고 있다. 세상은 굉장히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어떤 것들은 별로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우리는 언제 선배를 찾을까? 고민이 있거나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혹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선배가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선배는 곁에 잘 없고 생각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글로 써볼 것을 권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후배 한 사람이 내게 면담을 신청했다. 경력으로 입사한 그 친구는 이전 회사와는 일하는 방식도, 문화도 달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고민을 늘어놓더니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답을 주는 대신 고민을 노트에 써본 후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가 다시 왔고 작은 글씨로 빽빽한 A4지 여러 장을 내밀었다. 그는 웃는 얼굴이었는데 고민이 많이 정리됐다고 했다. 나는 그가 쓴 페이퍼를 한 줄도 읽지 않고 돌려주면서 글을 쓰게 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법이 찾아지는데 그러자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잖아.” 과연 그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널뛰는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가자 신기하게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가 보였다고 했다. 나는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지만 그 후배는 길을 찾아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퇴직 후 2년쯤 지났을 때다. 내 딴에는 오랜 고민 끝에 퇴직을 결심했고 남은 생은 학생으로 공부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긴 터였다. 한데, 아는 것과 맞닥뜨리는 것은 같지 않았다. 자발적 선택이었음에도 퇴직 후의 자유가 더 이상 좋지 않았고 심지어는 우울했으며 외로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의 나야말로 선배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나는 선배를 찾는 대신 노트를 펼쳤다. 그러곤 쓰기 시작했다. 내 안의 수만 가지 어지러운 생각과 감정을 그저 마음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손목이 아프도록 써 내려간 페이지가 10쪽을 훌쩍 넘겼다.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마음이 거기 가득 적혀 있었는데 그 수많은 문장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것, 쓰이고 싶다는 것. 마음을 알기까지가 문제이지, 알고 나면 그 다음은 오히려 쉽다. 헤어졌지만 여전히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한 연인들이 다시 만나기 시작하듯 나도 다시 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7년째 책방마님으로 살고 있다.

운이 좋아 믿을 만한 선배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선배를 찾아 당신이 말한다. “선배님, 저 고민이 있어요.” “뭔데? 말해 봐.” 당신은 자세하게 당신의 고민을 설명한다. 그러곤 돌아오는 길.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하다. 사실, 선배는 별 조언을 해준 게 없다. 그저 성심껏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고민은 꽤나 정리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객관화’가 된 것이다. 선배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 당신은 우선 고민이 무엇인지 요모조모 잘 정리해서 전달한다. 바로 그거다.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던 고민을 밖으로 끄집어내니 정체가 환히 들여다보인 것이다. 선배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이었지만 실은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고 객관화한 거다. 사실, 해법은 문제가 무엇인지 똑바로 아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문제가 뭔지 모르거나 다른 것을 문제라 오해한다. 그러면 해법이 요원하다.

사람의 마음은 의식이 10%, 무의식이 90%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 자신의 안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욕망하며 무엇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지 알려면 그것들을 의식 위로 꺼내야 한다. 객관화 작업이자 출력 과정인데, 이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로 써보는 거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깊은 욕망과 만나는 일이며 또한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다. 고민과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 스스로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우리에겐 그런 힘이 있다. 다만 꺼내 쓰지 않을 뿐이다. 좋은 선배를 가지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선배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다. 지금 고민이 있다면 노트를 펴고 쓰기 시작하시라. 당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길이 보일 것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고민#선배#문제 객관화#조언#스스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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