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대통령 임기 1년과 바꿀 만한 정책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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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치로 ‘無성과 정부’ 우려 커져
2년 취임덕 후 3년 레임덕 대비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반쪽이 텅 빈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 윤석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극단적으로 둘로 쪼개진 나라에서 0.73%포인트 차로 대통령이 된 만큼 각오를 단단히 했다고 해도 속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국정철학이 담긴 첫 예산안을 들고 연단에 올랐는데 헌정사상 첫 야당 보이콧이라니. 혹시 이런 걱정에 식은땀이 나진 않았을까. ‘이러다 공약 하나 실현 못하고 임기 5년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

대통령이 스타일을 구긴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한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막아설 기세다. 그 바람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 ‘윤석열표 정책’들은 줄줄이 무산 위기다.

올해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경감은 법 개정 시한을 넘겨 사실상 무산됐다. 대선 기간 중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완화를 약속한 사안인데도 그렇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핵심 과제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도 난망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3%포인트 올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2%)보다 크게 높아진 25% 법인세율을 원상복구하자는 것인데도 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절대 반대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대만 정부가 특단의 반도체산업 육성 방안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날마다 쏟아져서 웬만하면 여야 만장일치로 ‘K칩스법’을 통과시킬 만도 한데 국회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지역화폐 등 포퓰리즘성 예산이 삭감된 것 등을 문제 삼아 ‘예산전쟁’까지 벌이겠다고 한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윤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역정을 냈을 상황이다.

지난 정부와 이 대표에 대한 적폐청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우파 지지층에 ‘정부 정책 마비’는 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있다. 내년까지 ‘공정과 상식’을 철저히 실현해 내후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모두 해결될 문제라고. 하지만 30% 안팎을 맴도는 대통령 지지율, 민주당 몽니에도 늘지 않는 국민의힘 지지 기반을 고려할 때 총선 승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2년 취임덕에 이은 3년 레임덕이 올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뜻이다. 그때가 되면 야권은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며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할 것이다. 플랜B가 필요한 이유다.

총선 후에도 여야의 극한 대치가 계속돼 ‘5년 무성과 정부’ 가능성이 커질 때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성과 없는 5년을 꼭 해야 할 일을 해낸 4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통령 임기 1년과 맞바꿔서라도 꼭 해내야 할 정책이 바로 연금개혁과 재정준칙 도입이다. 현 정부 치하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않은 야당 지지층이 두터운 만큼 야권도 호응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나라의 미래를 고려하면 누군가 당장 총대를 메야 하지만 ‘표 의식하는 정치인은 절대 못 한다’는 게 연금개혁이다. 정치권에 빚진 게 가장 적고 이미 대통령 자리에 있는 윤 대통령이 적임자다. 대통령이 이번 시정연설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지만 헌법, 법률이 정하는 재정준칙을 못 만들면 돈 퍼주기를 선호하는 정권이 들어서는 순간 모두 허사가 된다.

물론 현 정부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YS의 금융실명제, DJ의 인터넷 강국, 노무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같이 나라의 물길을 바꾼 정책 업적은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더 절실해야 하고, 꼭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여야 대치#무성과 정부#레임덕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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